북한 노동당 외교사업 담당자들의 인사가 단행되면서 미국을 향해선 ‘적대적’, 남측을 향해선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외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에 관심이 쏠린다.
‘대남(對南)·대미(對美)’ 대외 사업을 총괄했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제외되고, 당 부장 명단에도 빠진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김 제1부부장의 강등과 함께 대남·대미 관련 인사들의 직위도 낮아졌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당 총비서’로 추대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분간 대외 관계보단 내치활동에 집중하겠다는 뜻이 포함됐다고 분석한다. 다만 일부 대외 강경파 인사가 기존의 지위를 유지한 만큼 김 위원장이 직접 대외관계 전략을 결정하고 상황과 필요에 따라 추가 인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차 전원회의 공보 등에 따르면 김 제1부부장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기존에 포함됐던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현재 ‘김여정’의 이름은 정치국 후보위원보다 낮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 명단에만 포함된 상태다.
정부·정보당국은 앞서 제8차 당 대회 주요 관전 포인트를 전망하면서 김 제1부부장의 위상 격상을 점쳤다.
특히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 제1부부장에 대해 “외교·안보뿐 아니라 당 참관행사의 총괄기획까지 국정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김여정이 8차 당대회에서 위상에 걸맞은 당직책을 부여받을 가능성도 있어 주시하고 있다”라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결과 김 제1부부장의 직책은 오히려 강등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인사 결과만으로 김 제1부부장의 위상이 약화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김 제1부부장의 김 위원장의 친동생이자 ‘백두혈통’이기 때문에 직책이나 직함과는 무관하게 정치적 위상은 공고할 거란 얘기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대남·대외·안보 부분을 총괄하는 남측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해당하는 조직을 신설해 이를 김 제1부부장에게 맡길 수 있다고 관측하기도 한다.
김 제1부부장의 직책 강등과 함께 대미·대남 인사들의 이동도 주목을 받는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실무진으로 북한의 대표 대미 라인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됐다.
또 대남 문제를 총괄했던 김영철 당 부위원장은 당 비서에서 제외됐지만, 통일전선부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남 담당이던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은 부장단 명단에서 빠졌다. 반면 ‘강경 외교인사’인 리선권 외무상은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를 유지했다.
대남, 대미 인사들의 낙방이 이어지는 사이 대중 외교 담당 인사는 승진했다. 대중 외교를 담당해 온 김성남 당 국제부 제1부부장은 당 부장으로 임명됐다.
정성장 미국 월슨센터 연구위원 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외교 및 대남 엘리트의 위상이 하락했다”고 평가하며 “김정은이 적어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 외교나 남북관계보다 내치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