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29% 나훈아의 비밀(1)]소크라테스를 왜 뽕짝에 모셔왔나

2020-10-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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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전날밤인 30일 방송된 KBS2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언택트 공연의 시청률은 전국 기준 29.0%(닐슨코리아 집계)였다. 일부 지역에선 40%를 넘었으며, 올레TV의 실시간 시청률은 한때 70%를 찍기도 했다. 나훈아는 15년만에 방송에 출연했으며 방송 공연으로서는 1996년 빅쇼 이후 24년 만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오랜 기간 준비한 공연이 어렵게 될 뻔 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면서 사전(지난달 23일) 비대면 공연으로 1000명의 온라인 관객과 함께 촬영했다. 고향, 사랑, 인생을 주제로 한 3부작 무대로 공연을 꾸몄다. 상당한 공백이 있었으면서도 한 순간에 '나훈아 신드롬'을 재폭발시킨 그 저력의 비밀은 뭘까. 시리즈로 짚어보기로 한다.
 

[나훈아 2020 대한민국 어게인 콘서트.[사진 = KBS2 방송영상]]



코로나 시대, 국민힐링 무대
이날(30일) 밤 2시간 30분간 진행된 공연은 나훈아의 신곡과 히트곡 30곡을 열창한 무대였다. 첫 곡은 '고향으로 가는 배'였다. 전염병 때문에 귀성을 포기했거나 어렵사리 마음을 내서 옛품으로 달려간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였다. 거대한 배가 바다 위에 출렁이는 대형스크린 속에서 나훈아는 등장했다. 압도적인 무대스케일에다, 오히려 더 깊어진 듯한 70세(나훈아 프로필에는 1947년생으로 나오나 실제 생년은 1950년생) 가수의 웅숭깊은 정회(情懷)의 목청이 묵직한 광선처럼 뿜어져 나왔다.

나훈아가 이날 꿈꾸었던 무대는 아마도 '국민힐링'이 아니었을까. 공연료를 거부했던 것도, 이것이 그가 해야할 어떤 미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투리를 섞어가며 이런 말을 했다. "오늘 같은 공연을 태어나서 처음 해봅니다. 우리는 지금의 베레벨(별의별) 꼴을 다 보고 살고 있습니다. (여기엔 전염병과 경제불황, 극심한 사회갈등, 정치적 논쟁 등 연일 터져나오는 사건들에 대한 한 가수의 간결하면서 뼈있는 논평이 담겨 있다.) 답답한 것이 공연을 하면서 서로 눈도 좀 쳐다보고, 거기다 '오랜만입니다' 손도 잡아야 하는데, 눈빛도 잘 보이지도 않고 우짜면 좋겠노. 하지만 뜨거운 응원이 느껴지면 할 것이 많습니다. 할 거는 천지 빼까리니까(많으니까) 밤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열정을 드러내며 분위기를 잡았다.

그는 노래 간간이 자신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코로나사태에서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게 된 'K방역'의 주인공들인 의료진에 대해 노래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에겐 영웅들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난리를 칠 때 우리 의사, 간호사 여러분들, 의료진들이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그분들을 위해 젖먹던 힘을 내서 열심히 (노래)할테니 의료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대한민국을 외쳐주십시오."

그러면서 그는 민(民)의 저력을 강조하는 말을 보탰다. 대통령을 거론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역사책을 봐도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라를 누가 지켰느냐 하면 바로 국민 여러분들입니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이 모두 국민이었다. IMF 외환위기 때도 나라를 위해서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해서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국민이 살아있으면 위정(僞政, 가짜정치)을 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왜 이렇게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을까요. 말을 안 듣기 때문입니다. 말 잘 듣는 우리 국민이 1등입니다." 돋보인 시민의식을 이렇게 칭찬한 것이지만, 정치 지도자의 역할에 대한 비판을 곁들였다.

지친 국민들을 위해서는 위로를 보냈다. "주름이 생기는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죠. 신곡 제목인 테스형에게 세상이 왜 이러냐, 세월은 왜 흐르냐고 물어봤는데 모른다 합디다. 이왕 세월은 흐르는 거, 세월은 누가 뭐라 해도 가게 되어있으니까 이왕에 세월이 가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됩니다. 세월의 모가지를 딱 비틀어서 끌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면 끌려가는 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 가본 데도 가보고. 나는 죄는 안짓지만 파출소에 한 번 가서 캔커피 사드리고 ‘수고하십니다’ ‘구경하러 왔다’ 하고 한번 파출소 구경도 해봐야 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 겁니다. 준비됐지요?" 그러면서 그는 '청춘을 돌려다오'를 불렀다.

아버지 무덤 앞에서 소크라테스를 논하다

나훈아가 유머를 섞어 소개한 그의 신곡 '테스형'은 대중가요가 대담하고 익살스럽게 담아낸 서양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가리키는 것이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죽어도 오고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이 노래는 2절에 나오는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란 가사처럼, 그가 무대를 떠나 고립된 삶을 살던 시절에 힘겨울 때마다 돌아간 부친을 그리며 쓴 글을 노랫말로 하여 작곡한 것이다. 나훈아는 작년에 '울 아버지'란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내가 내가 가는 이 길은/우리 아버지가 먼저 가신 길/내가 흘린 땀보다/더 많은 땀을 흘리시며/닦아놓은 그 길을 내가 갑니다/이제 또 내 자식이 따라오겠죠/나름대로 꿈을 꾸면서/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듯/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시던 말씀/ 이 나이에 알았습니다/그 사랑 뒤에 흘린 눈물을 이 나이에 알았습니다/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울 아버지"

그가 아버지 무덤에서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르며 인간적으로 질문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란 사실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에게 부여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버지가 두고 가신 이 세상을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 묻고 싶었을 것이다. 트로트가 소크라테스를 담은 것은, 대중의 마음이 닿는 이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트로트에 담지 못할 것은 없다는 영토확장의 시범을 보인 것이기도 하다.

KBS는 오는 3일 밤 10시30분 공연 준비과정을 담은 다큐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 15분간의 외출'을 방송하기로 했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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