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력이 상승하거나 추락하는 궤적의 이면에는 외부적 혹은 내부적 환경이 병존한다. 이에 적응하고 변신하는 리더십과 국민성에 따라 결과는 판이해진다. 국력이 정점(Peak)까지 도달하는 국가도 있지만 중도에 하차하는 국가도 수두룩하다. 결국, 경제력이 국력의 평가 결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가 이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의 방향과 목표를 어디에 두고 구성원들의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상당수의 국가가 잘못된 선택으로 리더십이 결정되고, 거기에 함몰된 절대다수가 국가를 수렁에 빠져들게 한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지만, 더 많은 성공을 만들어내는 국가가 궁극적으로 우위에 서게 된다.
국력이 정점을 찍고 있다면 더 이상 올라가기보다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려가야 현명한 것인가로 초점이 모인다. 최근 일본인들이 이에 대한 냉철한 자성과 판단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다시는 ‘세계 1등 국가 일본’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편협한 극우 민주족주의 대신 보편적 개방형 국가로의 전환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일본처럼 20세기 전 기간을 포함하여 지난 약 150년간 세계 1등을 오르내리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국가도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외부적으론 중국 등 잠재적 경쟁자가 더 크게 두드러지고, 내부에서는 저출산·고령화와 성장동력의 고갈 등으로 팽창하기보다 수축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지금이 우리 국력 정점이면 너무 억울, 정치 정상화와 시대정신에 민감한 국민 자각 필요
일본의 국력이 후퇴하면서 그들이 경험한 내우외환을 정리해 보자. 우선으로 지적되는 것은 고질적인 정치 후진성이다. 잃어버린 20년의 고비마다 정치적 리더십이 실종하면서 방황과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1993년, 2009년 약 4년간 야당의 집권이 있었지만, 자민당 1당 혹은 1.5당 독주 체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의 일본을 만든 장본인들이 자민당과 이를 지지한 유권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굴곡의 터널을 벗어나 일본 재건에 대한 책임까지도 이들에게 맡겼다. 일시적으로 경제가 살아나기도 했지만 완벽한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겹친 코로나 사태는 다시 정치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 현 집권 세력의 보수 우경화에 대한 혐오가 다시 꿈틀거리고, 큰 국가보다 보통 국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출현하는 강력한 경쟁자들의 부상이다. 중국의 급부상은 일본의 부활을 좌절시키는 결정타가 되었다. 2010년 경제력에서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주고, 이후 그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는 판이다.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잦은 분쟁은 자존심에 그치지 않고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시아 시장 지배력도 예전과 같지 않다. 반도체, 조선, 가전, 스마트폰 등 일부 산업 분야에서는 한국에 1위 자리를 내주는 수모도 당했다. 삼중재난(지진+쓰나미+원전사고)이라고 불리는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국민에겐 좌절과 절망을 안기면서 미래에 대한 좌표를 수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 국력의 피크는 언제인가? 단군 이래 이만큼 잘살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리면서 국력이 계속 상승해왔다. 하지만 근자에 성장동력이 상실하면서 가진 파이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는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자중지란이다. 미래는 안중(眼中)에도 없다. 일본과는 다르게 역동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생산적인 결과로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른 이야기다. 일본은 정점까지 가본 국가이고, 내려온다고 그들은 여전히 3등이다. 그 위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아직은 우리는 정점에 와 있지 않으며, 여기서 주저앉는다면 실로 억울하다. 지금까지 축적해 놓은 많은 것들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정치의 정상적 작동과 국민이 시대정신을 자각해야 그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