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그냥이라는 말로 덮어두고픈 온갖 이유들이 한순간 잠들어 있다
그것들 중 일부는 잠을 털고 일어나거나 아니면 영원히 그 잠 속에서 생을 마쳐갈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냥 속에는 그냥이 산다는 말은 맞다
그냥의 집은 참 쓸쓸하겠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입술처럼 그렇게
깊은 산 그림자 같은 속을 알 수 없는 어둔 강물 혹은 그 강물 위를 떠가는
나뭇잎사귀 같은 것들이 다 그냥이다
그래서 난 그냥이 좋다 그냥 그것들이 좋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그 마음들의 물살이 가슴에 닿는 느낌이 좋다
그냥 속에 살아가는 당신을 만나는 일처럼
이승희의 '그냥'
아침 출근길 라디오 음악프로에서 '그냥'이라는 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이 말이 주는 묘한 푸근함 같은 것의 정체가 뭘까 궁금해하는 멘트였던 것 같다. 그냥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한 가지 의미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냥 버티기만 하면 돼."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지만 상태가 아닌 동작이 없는 경우를 말할 때도 쓰인다. "아무 조치도 안하고 그냥 있었단 말야?" "그놈을 그냥 놓아뒀단 말야?" "곪은 염통이 그냥 나을까?"
이것과는 좀 달리 '조건이나 대가, 혹은 의미가 없이'라는 뜻도 있다. 가벼운 수리를 해주고 대가를 받지 않고 "그냥 가져가세요"하고 호의를 베풀 때 쓰는 '그냥'이다. "당신이 그냥 좋아." 이럴 때는 조건이나 이유같은 게 딱히 없는 상황에서 좋은 것이다. 그림 속에 왜 닭을 세 마리 그려넣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냥 그렇게 넣었어요"라고 대답할 때는 의미나 까닭이 없이 했다는 얘기다.
라디오 프로에서 말한 '그냥'은 이유나 조건, 혹은 대가 없이 생겨나는 호의나 호감, 혹은 의욕이나 의지를 말하는 '그냥'일 것이다.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무작정 길을 걷고 싶어,라고 할 때의 '무작정'과 통하는 말이다. 사랑은, 굳이 분석해보면 이유가 없을 리 없지만, 그것이 불쑥 찾아드는 비밀에는, 뭐라 까닭을 말하기 어려운 '그냥 심리학' 같은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냥 좋다는 것. 좋은 걸 어떡해,라는 것. 그 계산없고 이유없는 마음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건 늘 신비롭게 느껴지는 일이다.
이승희의 시를 읽노라면, '그냥'이란 말이 자연(自然) 그 자체의 본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겠다 싶다. "깊은 산 그림자 같은 속을 알 수 없는 어둔 강물 혹은 그 강물 위를 떠가는 / 나뭇잎사귀 같은 것들이 다 그냥이다"라는 통찰에서 그런 말맛이 보인다. 누가 만들거나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것, 그냥 거기에 그렇게 자라고 죽고 하는 것. 그게 자연이 아닌가.
그냥의 어원을 찾아보니, 19세기 말에 불쑥 나타났다는 자료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1896년의 잡지 '심상'에 보면, "그냥 올타 그러나 그냥은 쥬지 아니 하겠스니 爲先(위선) 이 籠(농, 새장) 속에 드러가 보라 하고"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냥 옳다. 그러나 그냥은 주지 않겠으니 우선 이 새장 속에 들어가보라"라는 듯이다. '그냥 옳다'에 쓰인 말은 '지금 그 상태 그대로'라는 의미이니 앞의 뜻이고, '그냥은 주지 않겠으니'는 '조건 없이'라는 후자의 그냥이다. 그때부터도 양쪽이 다 쓰이고 있었다는 얘기다.
한반도의 남북단(경상도, 전라도, 함경도)에서는 '그냥'을 '기양'이라고 쓴다. 강조할 땐 '걍'이 된다. "걍, 가져가!" 할 때의 호기로움을 기억할 것이다. 준첩어까지 만들어서 '기양저양 살았지뭐' 같은 말도 쓴다. 이 말은 표준어 준첩어인 '그냥저냥'과 닮았다. 19세기 이전에, 한자어 기양(其樣)이 어떤 식으로 그냥과 같은 쓰임새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기양'은 '그 모양(상태, 조건)'라는 뜻이다. 기양 좋다는 것은 그 모양이나 상태가 좋다는 것이다. 공짜를 의미하는 그냥은 '아무런 추가조건이 없다'는 의미로 쓰였던 것 같다. 그냥과 기양(其樣)은 대중과 식자들 사이에서 서로 넘나들며 한동안 쓰이다가 '그냥'이 보편적으로 채택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양은 더하거나 뺄 것 없는 '그 모양 그대로'라는 의미로 굳어졌다. 일본어의 '其樣な(그런)'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말 '그냥'의 뉘앙스가 생겨나는데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음악디제이의 말대로 '그냥'은 참 아름답고 신비한 말이다. 모든 것에 조건이 붙고 이유가 붙는 시장통 같은 세상에, 그걸 뛰어넘어 서슴없이 '그냥' 큰 돈을 내놓고 큰 도움을 주고 큰 마음을 베푸는 이들이, 이 낱말의 기적같은 걸 가끔 보여준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생겨나는 감정들에 대해 좀 더 진솔해지는 일이, 우리를 잘고 얕은 속셈들에게서 벗어나 조금은 더 숙려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라디오가 그냥 좋아지는 마음도, 그런 게 아닐까.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