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세계는 ‘디커플링'이 대세, 한국의 포지션은?

2020-01-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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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S 2020' 현장, 미래 생존을 위해 한국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가를 제시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매년 새해 벽두에 개최되는 라스베이거스의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다. 특히 기업을 하거나 경제 정책을 운용하는 사람들일수록 이 이벤트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올해는 향후 10년 동안 어떤 먹거리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어떤 기술이 선도할 것이며, 누가 시장에서 우월자적 위치에 설 수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글로벌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업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며, 국가 간에도 명암이 엇갈릴 수 있는 중요한 경쟁 이슈거리들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기업들도 이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CES 현장을 다녀와야 혁신적인 인사로 분류되는지, 기를 쓰고 고위직들이 얼굴을 내밀기까지 한다.

CES가 가전을 넘어 자동차, 통신 등으로 범주를 확대시켜 온 것은 이미 10년을 넘어서고 있다. 최근의 특징은 자동차에 더하여 항공기, 드론 등 모빌리티와 관련된 기술과 더불어 5G 통신과 관련한 솔루션이 등장하고 있는 점이다. 한편으론 ‘가파(GAFA,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금년의 화두는 미래 먹거리의 중심에 인공지능(AI)이 기술의 촉진자 내지 생활의 일부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소위 말하는 ‘AI 패권’ 시대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AI 주도권을 잡는 기업 혹은 국가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화두로 AI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AI 시대에 대비하는 한국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다. 우리 정보화진흥원이 공개한 한국을 포함한 비교 대상 8개국의 AI 기업 수에서도 우리가 꼴찌이다. 2018년 기준 미국은 2028개, 중국은 1011개인데, 한국은 고작 26개사에 불과하다. 지난 2년간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거의 제로에 가까워 이 부문에서도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스타트업이 생겨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규제이다.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AI 기업의 출현은 차치하고 생태계가 생겨날 리 만무하다. 구호만 요란하고, 모든 것은 단절되며, 글로벌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가식과 무지의 수준이 극치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규제를 풀어야 할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절박감과 통찰력이 보이지 않는 점이다.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로 기존 구조를 파괴하는 ‘디커플러(Decoupler)'들이 시장가치 지배

근자에 글로벌 커뮤니티에 큰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디커플링의 대표적 사례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글로벌 경제는 선진국과 신흥국이 세계화라는 '커플링(Coupling·동조화)'을 통해 상호보완적 윈-윈(win-win) 구조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중국과 같은 신흥국의 부상으로 이 구조가 깨지면서 경쟁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다. 자연스럽게 글로벌 경제의 커플링을 붕괴(Disruption)시키려는 ‘디커플러(Decoupler)'들이 도처에 번쩍거린다. 그 대표주자가 미국이다. 판을 깨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커플링이 대세적인 분위기가 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의 밀월과 같은 이색적인 커플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움직이는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디커플링이 더 적나라하다. 승기를 잡는 기업들을 보면 기존의 시장이나 경쟁의 구조를 과감하게 파괴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다. 과거와 다르게 기술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고객이 시장의 흐름을 주도한다. 최신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기업들이 가치 창출의 우위에 선다. 제조 기술을 가진 기업과 플랫폼을 가진 기업 간의 커플링이 가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고객가치사슬(CVC, Customer Value Chain)의 급변을 제대로 읽고 전통적 경쟁 구도에서 빠르게 이탈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집단들이 바로 디커플러들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은 글로벌 경기의 순환과도 무관치 않다. 2010년대,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기존 시장질서나 경쟁의 형태를 바꾸기 위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나 디커플러들의 몸부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고, AI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의 파이를 키워 그 파이를 차지하겠다는 국가와 기업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경쟁의 최전선에서 나서고 있는 우리 대기업 군단의 위세가 갈수록 외로워 보인다. 정부는 무능해 보이고, 대기업을 떠받치는 스타트업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타다’ 해프닝으로 벌어진 우리 사회의 혁신에 대한 인식을 보면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있으면, 이제는 실행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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