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만 아니다. 미국은 최근 인도·태평양 지역 내 안보 지도국 위상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아시아가 안보경쟁의 장으로 떠오른 것이다. 구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됐던 세계는 다시 한번 미국과 중국의 편으로 갈라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전세계의 경제·안보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힌 상황에서 신냉전의 대립 양상은 훨씬 더 복잡해 보인다. 영향권 내에 있는 국가들이 보다 정교한 외교전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 "中 인도·태평양 불안케 해"···미국, 중국 위협론 재강조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4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미국·호주의 외교·국방 장관회담인 '2+2회의'(AUSMIN)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작심하고 중국을 비판했다. 에스퍼 장관은 "중국은 세계 공동자산(남중국해)의 무기화, 약탈적인 경제, 주권을 거래하는 부채와 정부가 지원하는 지적재산권 도둑질과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스퍼 장관의 발언은 지난해 10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허드슨 연설과 맥을 같이 한다. 당시 펜스 부통령은 중국은 장기간의 파트너십 관계를 지적재산권 약탈 등 경제침략과 안보위협으로 되갚았다고 비난했다. 이어 "중국은 동아시아 태평양권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미국이 이 지역 동맹국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견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또 중국이 '채권 외교'를 통해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 후진국들에 수 천억 달러의 인프라 건설 차관을 제공한 뒤 갚지 못하면 해당 시설을 넘겨받는 약탈적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힘을 더욱 더 강력하게 만들어 미국의 이익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의 이날 발언은 허드슨 연설에 비친 미국의 대중정책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트럼프 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동아시아 및 동남아 동맹 국가와 지역에 대한 군사·외교·경제적 관여 강화를 위해 2023년까지 연간 15억 달러(약 1조6000억원)를 지출하는 내용의 ‘아시아 안심법안’을 승인한 것은 물론 지난 5월 미국 군함 2척이 중국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및 호주 우방들과의 협력은 한쪽이 이기고 다른 한쪽은 질 위험이 있는 '제로섬'이 아니라 상호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주 "미-중 모두 중요"…中 "일본, 중국 없인 안 돼"
그러나 미국이 보호무역을 강조하면서 거의 모든 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안보동맹이 제대로 형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자유무역 확대에 협조했지만, 정작 미국은 보호무역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동맹국들이 안보 협력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 역시 미국 앞에서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호주 머리스 페인 외무장관은 "우리는 중국을 극도로 중요한(vitally important) 호주의 파트너로 본다"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중국과의) 포괄·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도·태평양이 더 경쟁적이고 적대적으로 변화해서 이익을 얻는 곳은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안정과 안보, 번영이라는 이슈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의 핵심 파트너들, 즉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동맹 파트너인 미국과 우리의 핵심파트너인 중국과 밀접히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과 호주는 중국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독자적 외교노선을 통해 안보 동맹인 미국과 경제 파트너로 중국 모두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호주가 일단 균형적 외교론을 내놓기는 했지만, 앞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하오 중국 외교학원의 전략평화연구센터 주임은 이날 글로벌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일본을 예로 들어 이 같은 딜레마를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일본은 미국 외교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노선을 바꿨다"며 "일본은 중국 없이는 경제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고, 한편으로 과거 미국과의 안보 동맹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균형을 잡는 것은 힘들다"며 "과거처럼 미국은 믿을 수 없는 상대가 되었다. 이는 일본이 처한 안보 전략의 위험을 잘 알려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