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일본 정부가 아베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제공하는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절차상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은 7일 나루히토 일왕이 서명 후 공표하게 된다. ‘각료회의 의결→일왕 공표→21일 후 시행’ 3단계 진행으로, 오는 28일부터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시행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결정한 것에 대해 '이기적인 민폐' 행위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조치는 양국 간의 오랜 경제 협력과 우호 협력 관계를 훼손하는 것으로 양국 관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려 세계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민폐 행위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5월 1일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고 아들인 나루히토가 제126대 일왕에 즉위했다. 그는 "아키히토 전 일왕은 30년 이상 세계 평화와 국민 행복을 기원했다"며 "상왕의 행보를 깊이 생각해 (저 역시) 국민에게 다가설 것이고 국민의 행복, 국가 발전, 세계 평화를 간절하게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질서와 평화에 힘쓰겠다는 게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 메시지였다.
그러나 3개월 만에 그는 자신의 신념과 다짐과는 사뭇 방향이 다른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번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비단, 한·일 간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에 걸친 경색국면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중국·러시아·한국·북한·일본 등 동북아 안보 지형을 뒤흔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픈 아베 정부의 야심을 실현할 수 있는 단초가 이번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물론 나루히토 일왕은 헌법에 따라 국정에 개입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아베 정부가 국제 무역 질서와 평화를 교란하지 않도록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게 일본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국제사회와 함께 평화를 논할 수 있는 기회를 일본 스스로 걷어찰 수 있는 만큼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번 선택은 일본 사회에서 일왕의 정치적 위치를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로도 평가된다. 즉위한 지 3개월된 일왕 역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일본사회에 정통한 한 일본학 교수는 "(신원 비공개를 전제로) 가능성은 낮더라도 오는 7일 일왕의 서명을 미루게 하는 등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며 "보수 정부 탓에 경색 국면으로 치닫게 될 한·일 관계를 해결하는 데 일왕이 평화를 전제로 나선다면 일본 국민까지도 공감할 수 있는 명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