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탓에 유럽 경제는 종종 일본과 비교된다. '잃어버린 20년'으로 통하는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 디플레이션 수렁에 빠진 일본 경제는 온갖 통화·재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상궤도를 찾지 못했다.
유럽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 경제 역시 '잃어버린 20년'을 향해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8년 말 이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물가상승률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목표로 하는 2%를 한참 밑돌았다. 지난 6월 기준 1.3%에 불과하다. 지난해 유로존 경제 성장률은 1.8%에 그쳤고, 올해는 1.2%까지 둔화할 전망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앞두고 있어 내년도 낙관하기 어렵다.
일본과 닮은 건 이게 다가 아니다. 인구 고령화와 연금 수급자 증가로 소비가 부진하고, 장기적인 저금리 환경에 따른 수익 악화로 은행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게 그렇다.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은행'들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대출을 제공하기는커녕 자본을 갉아먹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에서 가장 큰 은행인 도이체방크가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미국 4위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러더스는 2008년 파산하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CNN머니는 일본과 유럽의 근본적 차이가 유럽의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경기침체에 대응할 중앙은행과 정부가 단일팀이다. 마음만 먹으면 단호하고 신속한 행동이 가능하다. 아직 성과가 미미하지만,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그동안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고전분투해왔다.
반면 유럽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다양한 나라로 구성된 연합체다. 통화정책은 ECB에서 정하지만, 재정정책은 제각각이다. 각국이 EU의 큰 틀 아래 나름의 예산을 편성해 집행한다. 나라마다 요구하는 처방이 다르기 때문에 ECB가 모두의 입맛에 맞는 정책 결정을 내리는 게 여의치 않다.
전문가들은 유럽을 침체에서 건져내기 위해선 각국 정부가 단합된 재정 부양책을 펼쳐 경기를 띄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제는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이다. 이 역시 연합체의 특성에 기인한다. 독일의 경우 정치적 반대에 부딪힐 공산이 크고, 이탈리아는 정부의 부양 능력 자체에 한계가 있다.
문제는 시간을 질질 끌다간 장기불황에 빠져 더 큰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역내 성장 불평등이 심화하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카르스텐 브제스키 IN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이 또 하나의 '잃어버린 10년'을 향할 경우 유로존이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유럽 경제에 만연한 저성장과 저물가는 나라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엔 하나의 틀을 해체하자는 세력이 거듭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