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슬픈 풀꽃이여
내년에 봄빛 이르거든 왕손과 더불어 오세
푸르고 푸른 풀꽃이여
내년에 봄빛 이르거든 고려강산에도 다녀가오
정겨운 풀꽃이여 올해 4월29일에
폭탄 던진 한 소리로 맹세하세
1932년 4월 29일 오전 10시. 윤봉길은 불쑥 자신의 시계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6원을 주고 산 것입니다.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저에게 주십시오." "어찌 좋은 시계를 날 주는가?" 백범 김구가 손을 내젓자, 윤봉길은 웃으며 말한다. "제 시계는 이제 한 시간밖에 소용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눈을 서로 마주 본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윤봉길이 건넨 시계를 백범이 받고 자신의 것을 내준다. 자신의 죽음을 작정한 사람이 그 뒤 세상에 남을 사람에게 건네는 '자신의 시간'. 이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윤봉길은 4월 26일 임시정부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 자신이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행할 일이 개인테러가 아니라 국가의 행위인 군인전투로 규정되고자 함이었다. 가입선서식을 마친 뒤 거사에 쓰기 위해 시계를 샀다. 윤봉길은 백범의 낡은 시계를 보면서, 이 나라의 남은 체통을 꾸려가는 그의 남루가 안타깝게 느껴졌을까. 시계를 바꾸자는 그 제안은, 그가 눈 감은 뒤에 여전히 흐를 시간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담은 것인지도 모른다. 김구는 저격으로 맞이한 임종의 순간까지 윤봉길 시계를 품고 있었다.
저 시는 '내일'과 '내년'을 말하고 있다. 그에게 그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나라를 위해 내일 죽을 청년이 바라보았던 풀꽃은 어떤 희망이었을까. 훙커우공원 풀꽃에게 말한 그 시간들의 빛과 꿈을, 우리는 제대로 받아 살고 있는가.
이빈섬 (시인·이상국 논설실장)
이빈섬 (시인·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