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섣부른 혈기 하나로
오르는 일에만 골몰하느라
내려가는 길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어느덧 전방엔 ‘더는 갈 수 없음’의
석양을 등지고 돌아선 너의
발밑에 돌무더기 시시로 무너져내리는
아슬한 벼랑 끝에 외발로 섰다
홍윤숙의 '낙법(落法)'중에서
낙법이란 말에는 무협소설의 매력이 숨어 있다. 무술이란, 인간의 몸이 존재의 질곡에 묶인 것이 아니라는 오래된 꿈이다. 몸이 마음대로 되는 경지, 몸의 움직임이 물질과 감각을 뚫고 나가 몸을 초월하는 경지. 무술은 그것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기저항이나 중력의 법칙을 이겨야 한다. 물론 그냥은 못 이긴다. 내공이 쌓여야 한다. 내공은 '연습의 신화'이다. 연습은 인간을 신에 가깝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내공은 몸과 정신이 한 올의 촉수로 만나는 경지이다. 장자에 나오는 백정처럼 칼끝이 번개처럼 움직여도 뼈에 닿지 않고 살을 발라낼 수 있는 그 경지이다.
낙법의 공력 또한 인간의 불가능을 뛰어넘는 꿈이다. 무거운 인간이 그 무게에 의해 고통받지 않고 급격한 추락에서 부드럽게 땅에 내려앉는 일. 인간에게서 갑자기 무게가 사라지고 깃털 같은 팔랑임만 남는 일. 탄력과 부드러움이 절묘한 리듬을 만들어내면서, 몇 바퀴 허공을 돌고나서도 고양이처럼 살풋 착지하는 일. 낙법의 상상에는 인간의 무의식에 내장된 추락의 공포를 바람결에 날려버리는 경쾌한 반전이 있다. 추락하는 사람의 비극은, 그들이 낙법을 익히지 않은 것에 있기도 하다. 그들은 나뭇잎처럼 팔랑거리며 내려앉을 수 없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돌려 말하면, 추락하지 않는 것은 날개가 있다. 낙법은 날개 없는 것들이 추락하지 않고 행복하게 착지하는 꿈이다.
홍윤숙의 '낙법'은 차원이 조금 다르다. 이를 테면 시간의 낙법이다. 공간의 낙법이라면 몸을 가볍게 만드는 법, 회전의 탄력을 높이는 법, 부드럽게 땅에 닿는 법 따위를 익히면 되겠으나 시간의 낙법은 어찌해야 하는가. 올라가는 시절과 내려가는 시절. 올라갈 땐 영원히 올라갈 것 같은 건방진 혈기 때문에 내려갈 일 따윈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창 좋다 싶더니 거의 '추락'에 가깝게 내려가는 게 아닌가. 이제쯤 낙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내공 없이 금방 만들어질 리 없다. 추락의 공황심리가 만만치 않다.
한 여당 국회의원이 문화재 사랑을 표방하며 목포의 집과 땅을 무더기로 사들이는 바람에 논란의 태풍을 맞았고, 일단 소속 정당에서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그는 반격을 벼르는 말들을 쏟아냈고, 야당에선 아예 여의도를 떠나라고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이 의원 또한 등법(登法)보다 훨씬 고단수인 낙법을 준비하진 못했나 보다. 시시로 무너지는 아슬한 벼랑 끝에 외발로 서서 연일 '기합'만 넣고 있는 듯하다.
이빈섬(시인·이상국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