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개봉한 영화 ‘협상’(감독 이종석)은 “언제나 새로운 일”에 뛰어들었던 손예진에게도 신선하고 낯선 경험을 안겨주었다. 상대 배우와 만나지 않고 이원방식으로 다른 공간에서 연기하게끔 하는 촬영 방식 때문이다.
이처럼 태국에서 벌어진 사상 최악의 인질극을 막기 위해 협상가 하채윤(손예진 분)이 인질범 민태구(현빈 분)에 일생일대의 협상을 시작하는 영화 ‘협상’은 그 촬영 방식만으로도 데뷔 20년 차 손예진에게 도전 같았던 작품이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배우 손예진의 일문일답이다
촬영방식에 대한 우려가 있었을 법도 한데. ‘협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원 촬영 방식은 어땠나?
- 똑같이 준비를 마치고 ‘레디, 액션’해서 촬영을 시작했다. 아래층에서는 현빈 씨가, 위에서는 제가. 하하하. 이원촬영 방식을 써야 날 것 그대로의 표정이 나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땐 ‘서로 모니터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하나?’ 생각했는데, 이원촬영 방식으로 찍겠다는 거다. 리스크가 크겠다는 생각과 ‘이게 가능할까?’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들었다. 테스트를 했는데도 잘 모르겠는 거다. 걱정이 컸는데 해보고 나니 이원촬영 방식이 아니었으면 이런 감정이 나오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허설이 많이 필요했겠다
- 그렇지 않다. 리허설은 따로 안 했다. 평소에도 리허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순간 초집중해서 나오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 저는 민태구의 말에 반응하는 인물이니 머릿속에 정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까 반응을 보려고 해도 절제, 폭발을 거듭하니까. 리허설보다는 시작 전 대화를 많이 나눴다.
현장에서 손예진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 작은 크기의 세트장이었다. 하하하. 불을 꺼야 하고 어두운 상황에서 모니터 속 상대를 보아야 하니 어렵기도 했다. 거기다 이원 촬영도 생소하고…. 촬영 방식이 적응되니 이번엔 장소가 적응이 안 되더라.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현장인 것 같더라.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하하. 연기적인 건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있는데 그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줘야 하니까. 감정은 12시간 안에 벌어지니까 날 것 그대로 변화 보여줘야 하니까. 그게 너무 힘들었던 거 같다.
유능한 협상가라고 소개, 논리적인 캐릭터일 거로 생각했는데 사실상 뜨거운 인물이었다
- 시나리오가 수정돼 지금의 하채윤이 탄생했다. 처음엔 정의만을 부르짖는 인물이었다. 트라우마도 없고 유능한 협상가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협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질범에게 직업적으로 접근하지만 나중에는 동화된다고 하더라. 범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좋은 협상과 결과를 이뤄낼 수 있다고 (감정적으로는) 인질범 편이라고 들었다. 채윤은 마음과 열정이 누구보다 앞서지만, 현실로 죽어 나가는 걸 직업인이기에 받아들이기에는 마음 약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삭제된 부분인데 극 중 채윤이 ‘민태구가 왜 날 불렀을까? 실적이 좋은 협상가도 아닌데’라는 대사가 있다. 그런 식의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관객들이 사실 기대하는 건 치열한 두뇌싸움과 끝에는 범인을 무찌르는 형식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보시고 제게 ‘의외’라고 많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리허설 없이 이원촬영 방식으로 연기하다 보니 상대의 반응에 놀랄 때도 많았을 것 같다
- 그렇다. 작은 모니터로 보다가 큰 스크린으로 보니 또 다른 점도 있더라. 큰 스크린에서는 손동작 하나하나 다 보이니까. 안 보이던 것들이 많이 보였다. 현빈 씨가 얼마나 준비하고 고민했는지 곳곳에서 보이더라. 시사회 마치고 현빈 씨에게 ‘이제까지 모습 중 제일 좋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할 거야’라는 게 무의식중에 있기 마련인데 그게 딱 없어지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정말 좋았다.
시나리오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 보통 영화들이 계속해서 다듬어서 바뀌기도 하지만 이번 영화는 특히나 그랬다. 얼기설기 짜여있는 것들이 촘촘해지는 것 같았다. 얽히고설킨 게 정리가 되고 캐릭터도 더 유연해졌다. 하채윤도 정의만을 부르짖는 게 아니라 인간적 트라우마도 다듬어져서 좋아졌다.
외적인 변화도 눈에 띄었다
-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외형 변신도 중요하니까. 이미지가 형성되는 게 중요해서 머리 길이, 메이크업, 눈썹 색깔 진하기까지도 신경 썼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수아 역 때문에 머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채윤 역에는 안 맞더라. 머리를 묶고 망도 씌워봤는데 전형적인 느낌이었다. 답이 안 나와서 결국 잘랐다. 머리는 붙일 수 있지만 단발머리 가발은 어색해서 안 되겠더라.
지난 필모그래피를 보면 참 다양한 장르, 캐릭터를 맡아왔다. 이토록 많은 작품에서 만나고 또 관객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변신만 한다고 해서 (관객들은) 다 인정해주지 않는다. 변신만 하는 건, 변신했구나 싶지 않나. 변신해서 성공까지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상투적이지만 끊임없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다른 캐릭터를 어떻게 하면 그 인물처럼 보이게 할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망도 있다. 관객들도 본 것 같은 작품, 캐릭터는 재미없을 테니까. 저는 조금이라도 비슷한 걸 하는 게 겁난다. ‘이런 비슷한 대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면 더 다르고 새로운 점을 찾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