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고 대출을 조이는 9·13 대책에 이어 서울·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한 이후, 서울 부동산 시장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몇 달 새 호가 1억~2억원 오르던 집값 급등세는 꺾이고 매물을 보유하려는 집주인과 더 낮은 가격에 집을 매입하려는 매수자 간 눈치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여기에 강력한 대출 규제로 투자수요와 실수요자 등의 주택 구입이 어려워져 한동안 거래 공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남권 일부 지역에선 급매물도 나오고 있다.
30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9월 셋째 주(지난 17일 기준) KB부동산 리브온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123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9월 첫 주 171에서 급락했다. 아직 매수우위 시장이 유지되고 있지만 과열양상은 뚜렷이 진정되는 모습이다.
강남 압구정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매물도 안 나오고 매수 문의도 뜸하다. 매수자들은 올해 8~9월 미친 듯 오르기 전의 가격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압구정현대 아파트 65평형이 43억원에 나왔다가 40억에 팔렸다. 집주인이 일시적 2주택자여서 급했다”고 귀띔했다. 같은 크기의 동일한 아파트는 39억원에도 급매물로 나와 있다. 다만, “대다수는 집값을 내릴 생각을 안 한다. 양도세를 가격에 반영해 팔릴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태도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에서도 호가가 5000만원 이상 하락한 매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용면적 76㎡의 경우 9·13 대책 전 19억2000만원에서 지금은 18억5000만∼18억7000만원으로, 전용 82㎡는 거래가격이 20억5000만원에서 20억원으로 내려앉았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장기보유특별공제 강화 등을 앞두고, 집주인들이 꼭대기일 때 팔자는 생각도 있고 갭투자 물건도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집값 상승세는 멈췄지만 수개월간 오른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매수자들이 가격만 확인하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3.3㎡당 1억원에 거래됐다는 소문이 돌았던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의 전용 129㎡는 최근 37억2000만원에 매매됐다. 서초구 잠원동 아크로리버뷰 전용 84㎡ 로열층은 26억원에 급매로 나와 있다.
◆거래량 급감…상승률 둔화
9·13 부동산 대책 발표를 전후로 아파트 거래량이 10분의1 수준으로 바짝 쪼그라들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13대책이 적용된 14일부터 28일까지 서울의 아파트 매매거래는 총 125건 진행됐다. 이는 하루 평균 약 8.3건으로, 9·13대책이 적용되지 않은 기간(9월 1~13일)의 일 평균 거래량 112.5건(총 1463건) 대비 92.6%가량 감소한 수준이다.
가격 상승세도 멈췄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9월 넷째 주(9월 24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전주(0.26%) 대비 절반 넘게 줄어든 0.10%로 나타났다.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는 지난주 0.29%에서 이번 주 0.07%로 상승률이 대폭 감소했다.
시장에서는 대책 전 거래량이 크게 늘어난 데는 투기 목적의 수요가 폭발한 영향이 한몫했다고 지적한다. 서초구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양도세 비과세 등 주택임대사업자들에게 혜택을 주니 투기 수요가 폭발했었다. 변두리에 집 사는 사람들한테 혜택을 줘야지 왜 그런 정책을 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9·13대책을 통해 주택임대사업자의 경우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40%로 제한했다. 9·13 대책 이전에 임대업 대출을 받았다가 만기를 연장하는 경우에는 종전 LTV를 적용받지만, 증액하거나 대환하면 곧바로 강화된 LTV 규제가 적용된다.
강북도 거래가 끊기기는 마찬가지다. 노원구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전세대출이 막히면서 투자 목적으로 매수하려는 수요가 사라졌다. 매수 문의는 아예 없고 매도 문의도 가격이 더 떨어졌는지를 묻는 게 다수다”면서도 “가격이 꼭대기에 도달해서야 투기 수요를 막았다. 실수요자들은 대출도 막히고 집값도 워낙 높아 급매물도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은평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이 지역에는 1가구 2주택자가 굉장히 많다. 여기에 주택임대사업자들이 집을 거둬들여 시장에 매물이 많지 않다. 실수요자들은 대출도 안 나오고 집도 워낙 비싸서 집을 못 사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구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과거에는 오피스텔 주인들이 벌금을 내면서라도 임대료를 대폭 올리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세금 혜택 등을 고려해 5%씩만 인상한다. 용산 오피스텔의 경우 올해 초만 해도 프리미엄이 거의 없었는데 3월부터 조명을 받으면서 수요가 폭발해 이른바 강남 사모님들이 몰려 지금은 분양가 대비 프리미엄이 1억원가량 붙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