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최초의 역사기록서로 평가받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조(襄公條)에도 유비무환(有備無患)에 대한 언급은 나온다. 춘추시대 정(鄭)나라가 연합국을 주도했던 진(晉)나라 도공에게 많은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도공은 연합국 지휘관으로서 공이 많았던 신하 위강에게 하사하려고 하자 위강은 받기를 거부하며 말했다. "평안히 지낼 때에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하여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居安思危 思危 則有備 有備則無患>"
기원전으로, 3000여년 전의 기록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장래는 태평성대이든 아니든 언제나 방심하면 안 되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이었던 것 같다. 현재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에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혁명의 역사는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에서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물리시스템의 구축이 기대되는 새로운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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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발단은 독일의 ‘인더스트리(Industry) 4.0’이라는 게 정설이다. 인더스트리 4.0은 제조업에 정보기술(IT) 시스템을 결합해 스마트 공장을 육성하는 독일의 제조업 정책을 말한다. 컨베이어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 공정이 아닌,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생산시스템을 완벽히 자동화한다. 예컨대, 신발 공장에서 신발을 50만 켤레 만드는 데 인원이 500명이 필요했다면 10명만 있어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 소수의 전문 인력으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조하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도 무관치 않다.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들을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으로 쉽게 불러들이는 정책이다. 값싼 노동시장을 이제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무인자동차 제조업체인 테슬라의 공장이 모두 미국에 있는 사실로 입증된다.
한국도 노동시장은 벌써 그 영향권에 든 것 같다. 직접 영향권은 아니라 해도 새 정부 출범 후 강조했던 일자리 만들기 정책의 성과부터 시원찮다. 비상이 걸렸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6~2030년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력 수요 전망’을 보면 정보·통신 전문가, 공학 전문가, 과학기술 전문가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인력 취업자를 포함해 증가하는 전체 일자리가 92만개다. 반면 디지털 유통채널 확대, 판매서비스 자동화, 스마트공장 자동화 등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80만개다. 2030년이 되면 순증 일자리는 12만개다. 경제·산업 구조를 제대로 개편했을 경우라고 하니, 벌써 걱정부터 앞선다.
경제성장률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잘해줘야 2030년까지 연평균 2.9%이고, 잘못하면 연평균 2.5%로 떨어진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인구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고 경제 성장을 이끌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회일 수 있다고도 한다. 이 또한 ‘잘되면’이라는 낙관적 가정법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새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과제로 기술혁신 지원, 인프라 구축, 민간투자 확대를 위한 규제개혁, 중소기업 연구개발 역량 강화, 벤처기업 지원 확대 등을 꼽았다. 학계, 연구계에서 얘기하는 대비책은 망라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설치했다. 기업도 신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최우선 경영전략으로 삼고 있어 일견하기엔 잘될 것 같아 보이지만 여전히 우려스럽다.
중국 후한(後漢)의 장수 마원은 조카들에게 보낸 계형자엄돈서(誡兄子嚴敦書)라는 편지에서 "각곡불성향유목(刻鵠不成向類鶩), 화호불성반유구(畵虎不成反類狗)"라며 행동거지에 대해 따끔하게 충고했다고 한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고니를 새기려다 거위를 새기고,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리게 된다'는 이 충고가 우리에게는 경고로 와닿는다.
정부, 기업, 국민이 4차 산업혁명의 주체다. 관련 전망이나 추정이 결과는 아니다. 달성해야 할 목표일 뿐이다. 혁명에서 가장 무서운 건 분열이다. 정부의 기업 불신, 국민의 정부 불신 등은 상호 발목을 잡는다. 신뢰와 존중, 소통이 필수적이다. '다 함께 힘을 모아'라는 집단적 열정도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