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냉전의 첫 번째 피해자는 ZTE가 될 것이다."
지난 5월초 미국 뉴욕타임스(NYT) 기사 제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시 ZTE에 대해 7년간 미국기업과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령을 내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제조업 강국’ 미국은 구글·아마존·퀄컴 등 기업을 앞세워 반도체, 5G, 인공지능(AI) 등 미래 하이테크 기술 방면에서 중국에 한발 앞서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2025년 제조업 강국을 목표로 세운 중국이 미국을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은 세계 특허 ‘넘버2’로 부상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는 특허 출원건수 방면에서 3년 내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5G 치고나가는 중국···미국의 '견제'
5G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에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기존의 4G보다 100배 빠른 인터넷 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5G는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다. 5G라는 '고속도로'가 깔려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스마트도시, AI, 자율주행차 등 미래 산업이 꽃을 피울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 마킷은 2035년 5G가 전 세계에 12조3000억 달러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서 미국은 5G 시장이 중국에 넘어갈까봐 우려한다. 미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ZTE와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업체의 미국 시장 진출에 잇달아 제동을 거는 이유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지난달 보고서를 발표해 "중국이 주도하는 '5G 쓰나미'에 미국이 중국을 따라잡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며 "중국이 5G를 선점해 버리면 향후 10년간 미국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경고했다.
보고서는 2015년부터 5G에 거액을 투자한 중국은 이미 35만개 5G 기지국을 건설했다며, 이는 같은 기간 미국(3만개)의 10배가 넘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향후 5년간 중국은 5G에 1조 달러를 투자할 계획으로, 이로써 중국 5G 기지국 건설 비용이 미국보다 35% 저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중국을 따라잡으려면 중국보다 2.67배 더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 이동통신산업협회(CTIA)도 보고서에서 5G 기술 준비가 잘 된 국가 1위로 중국을 꼽았다. 미국은 중국, 한국에 이은 3위로, 5G 상용화 준비 방면에서 중국에 뒤처진 걸로 나왔다.
그동안 1G~4G를 주도해 온 건 미국, 유럽, 한국, 일본 등 기업이었다. 중국은 5G에서만큼은 절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며 기술 개발에 주력해왔다. 스티브 몰렌코프 퀄컴 CEO는 앞서 5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5G 기술의 도래로 중국 하이테크 기업이 글로벌 스마트폰 산업 선두를 달리며 애플·삼성을 위협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아직 5G 원천 기술 방면에서는 미국 기업이 중국을 앞선다. ‘특허공룡’ 퀄컴이 대표적이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에 따르면 지난해 초 5G망에 필수적인 1450개 특허 중 퀄컴이 15%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키아는 11%, 에릭슨은 8%에 달했다. 화웨이·ZTE 등 중국기업은 모두 합쳐도 10%에 그쳤다. 하지만 2011년까지만 해도 화웨이·ZTE가 4G 특허의 7%를 보유하고, 퀄컴이 21%를 보유한 것과 비교하면 격차는 크게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특허 포식자’로 불리는 화웨이의 추격은 무시무시하다. 유럽연합(EU)위원회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 한 해에만 연구개발(R&D)에 120억 달러를 투입, 글로벌 기업 중 6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원래 R&D 예산이었던 150억 달러에서 50억 달러를 증액했다.
◆막 오른 '반도체 전쟁'···中 반도체 굴기 총력전
'전자제품의 꽃'이라 불리는 반도체 산업도 미·중 기술전쟁 한복판에 놓여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에서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가공하고 처리하는 데 반도체가 빠질 수 없기 때문. 게다가 통신, 미사일, 레이더 등 국방 부문에 이용돼 안보와도 직결되는 게 반도체다. 그만큼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간 힘겨루기도 치열하다.
미국은 올 3월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이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을 인수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5G 기술 선두주자인 퀄컴이 중국계 자본 영향력이 큰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브로드컴에 흡수되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다. 앞서 중국 역시 퀄컴의 네덜란드 반도체기업 NXP 인수를 끝내 승인하지 않았다. 중국으로선 5G 라이벌인 미국 퀄컴의 팽창을 사전에 막으려 한 것이다.
현재로서 중국 반도체 기술력은 아직 미국에 크게 못 미친다. 미국 온라인매체 쿼츠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은 반도체 강국 한국이나 미국에 비해 5~10년 정도 뒤처져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을 가지고 있지만 반도체 자급률은 20% 남짓에 그친다. 반도체 핵심기술이 부족한 중국은 통신장비, 스마트폰, 로봇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 제재로 퀄컴 등 미국 기업으로부터 통신 칩을 공급받지 못한 ZTE가 생산·영업을 중단한 채 ‘혼수 상태’에 빠진 이유다. 당시 중국 현지 언론들은 "막 오른 미·중 반도체 전쟁, 중국 반도체 산업 민낯 드러나다"라고 평가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까지 나서서 "핵심기술은 구걸이 아닌, 자력갱생으로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반도체 핵심기술 확보를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이는 이유다. 제조업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한 중국은 반도체 투자기금 규모는 2014년 1387억 위안에서 올해 3000억 위안 이상까지 늘렸다. 또 칭화유니 같은 국영 반도체기업을 앞세워 고성능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한편, 기술·인력 확보를 위해 글로벌 기업에 대한 공격적 인수·합병(M&A)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마이크론 같은 주요 반도체 기업 인수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반도체 핵심 기술을 보호하려는 미국 정부의 기술 봉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중국기업에 반도체 기술 이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만큼 사실상 중국이 미국·한국 반도체 기술력을 단기간 내 따라 잡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