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쇼크로 금융 시장이 불안해지자 아르헨티나와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즉각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다. 높은 금리를 따라 이동하는 자금 흐름의 특성상, 강세를 보이는 달러화의 추가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터키 리라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가운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의 이란 제재 등 불안한 세계 정세에 신흥국을 비롯한 각국의 통화 전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 "환율 방어하자"...금리 인상 조치 나선 중앙은행들
인도네시아가 금리를 인상한 것은 지난 5월 이후 벌써 네 번째다. 지난 2년 동안에는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기준금리를 7.50%에서 4.25%까지 단계적으로 인하했다. 최근 들어 3년래 최저 수준을 보였던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중앙은행의 발표 이후 달러 대비 1만4600루피아까지 가치가 상승했다.
앞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도 금리 인상 조치를 꺼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13일 긴급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40%에서 45%로 상향 조정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터키 쇼크의 영향으로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자 긴급 환율 방어에 나선 것이다. 아르헨티나 외환시장에서 페소화 가치는 16일 기준 달러 대비 29.88페소로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들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일단 태국은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방콕포스트는 15일 보도를 통해 "태국의 낮은 인플레이션이 채권 투자 수익을 지원하는 만큼 외국인 투자자들이 터키 위기를 피해 태국 채권을 매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도 관심이 쏠린다. 인도 루피화는 유가 상승과 미국발 무역전쟁 등으로 인해 올해 들어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달러당 루피화 환율은 올해 들어 전년 대비 9% 하락했다. 터키 리스크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달러당 70루피 선이 깨진 상태로, 현재 달러당 70.26루피 수준을 보이고 있다.
◆ 파운드화도 엔화도 '불안'...환율전쟁 본격화하나
환율 변동성에 대한 우려는 비단 신흥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달러화가 13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는 데다 국내외 정세 불안으로 인해 신흥국 통화뿐만 아니라 엔화, 파운드화 등 이른바 대규모 경제 국가의 통화도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지난 2일 현행 0.5%인 기준금리를 0.75%로 올렸다. 9개월 만에 나온 조치다. 지난 5월 이후 국내총생산(GDP)이 전월 대비 0.3% 증가하는 등 견조해졌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다만 브렉시트 협상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는, 이른바 '노 딜' 결과가 나올 경우 파운드화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브렉시트가 향후 영국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히고 있는 만큼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통화정책에 또 다른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15일 현재 달러화 대비 파운드 환율은 0.79파운드로 13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던 지난 10일보다 소폭 상승했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이 다른 통화보다 안전자산인 달러화와 엔화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일본 엔화의 가치는 반등했다. 16일 현재 달러 대비 엔화는 110.81엔 수준이다. 미국과 터키 간 정치적 대립이 악화될수록 엔화 매수 움직임이 늘겠지만 미·중 무역전쟁 논의 등 변수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터키 금융위기론이 불거지자 카타르가 150억 달러를 긴급 수혈하겠다고 밝혔지만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국제금융협회(IIF)는 "터키 리라화 가치가 적정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며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 주요 신흥국들은 터키 리스크에 따라 자본유출 부담을 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16일 현재 터키 리라화는 달러당 5.77리라로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