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그뒤]어느 일본인의 무덤 앞에서 12년째 오열하는 한국인

2018-07-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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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행취재]2005년 추사 자료 기증한 후지스카 아키나오를 기리는 최종수선생


2018년 7월4일, 다행히 태풍이 비껴간 도쿄 하기야마(萩山)마을의 고다이라(小平) 공원묘지. 일본인 가족묘 앞에 한국인이 앉아 꽃을 꽂고 향을 피운 뒤 술을 따른다. 전직 과천문화원장(2003-2011) 최종수(崔鍾秀·78) 선생은 '후지스카가문(藤塚家)'이라고 쓰인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태풍 끝의 후끈한 바람이 거센 한낮, 햇살에 달궈진 대리석은 열기를 뿜어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은 그의 어깨는 잠시 흔들렸다. 이날은 묘비 한쪽에 이름이 얹혀진 후지스카 아키나오(藤塚明直)의 12번째 기일. 한국 과천에 사는 최 선생은 왜 도쿄까지 날아와, 일본인에게 절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12년에 걸친 한결같은 '행사'라고 하는데...대체 이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후지스카 가족묘에서 아키나오의 기일에 예를 표하는 최종수 선생.]



# 아키나오 - 12년전 추사 관련 자료를 모두 기증하겠다고 밝힌 일본인

2006년 1월 잠깐 언론을 달궜던 문화뉴스 하나가 있었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 작품인 '세한도'를 한국인 손재형에게 건네준 학자 후지스카 지카시(藤塚鄰, 1879-1948)의 아들 아키나오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추사 관련 자료 일체를 한국 과천시에 돌려주겠다고 선언한 '사건'이었다. 

문화재 반환에 대해 지금까지도 줄곧 부정적인 일본의 분위기에 비춰볼 때, 개인 소장한 자료들을 좀 더 유용하게 연구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해 대가 없이 되돌려주겠다는 당시 아키나오의 파격적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물 연구비로 200만엔까지 내놓았다. (현재 해외에 흩어진 문화재는 소재가 파악된 것만 해도 7만4434점으로 이 중 46%가 일본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증 자료는 추사친필 26점, 청나라 학자와 교환한 서화 70여점, 황청경해 680책 등 경학자료 2500책, 후지스카가 정리한 원고와 사진 1000여점이다. 여기에 후지스카 집안의 고문서와 서적, 영화필름까지 따라왔다. 

기증자료가 인천공항에 처음 도착한 것은 1월 18일이었다. 7개월 뒤인 8월 23일엔 항공편으로 5상자분, 선박편으로 113상자분이 탁송됐다. "3세기에 백제 왕인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가져와 학문의 길을 열었듯이, 부친이 모은 자료들이 추사라는 위대한 인물을 새롭게 연구하는 길을 열어주기를 바랍니다. 부친도 이 기증을 기뻐할 것입니다." 

1차 기증 이후 아키나오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내가 지닌 방대한 자료를 어찌하지 못해 죽지도 못했습니다. 추사 관련 자료가 지금까지 나를 살게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5월18일 한국은 아키나오에게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여한다.

아키나오는 중학교 시절, 부친 지카시와 함께 한국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훈장은 그런 기억 때문에 더 각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렵, 병상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터라 거동이 불가능해 조카딸인 코마다 가즈코(駒田和子)가 대신 한국에 와서 받았다.

두 달이 채 못 지난 7월 4일 아키나오는 큰 짐을 던 사람처럼 평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기증자가 눈감은 뒤 한달 여 뒤에 나머지 기증품들이 배와 비행기에 실려 한국으로 건너왔다. 
 

[최종수 전 과천문화원장]



# 최종수 - "추사연구를 계속해 주세요" 일본인 신뢰를 이끌어낸 한국인

후지스카 가문이 소장한 추사 관련 자료들이 한국 과천시로 돌아오게 된 것은, 지카시-아키나오 부자의 '큰 뜻'이 이뤄진 것이지만, 이런 일을 성사시킨 데는 한국인 한 사람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숨어있었다. 당시 과천문화원장이었던 최종수 선생은 아키나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내면서 유물 기증을 현실화시켰다.

이 일이 시작되는 것은 그해 열릴 국제학술대회 때문이었다. 뛰어난 추사학자 지카시의 아들인 아키나오를 초청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때까진 연락처도 몰랐던 아키나오를 수소문하여 마침내 통화와 서신교환이 가능해졌다.

2016년 12월 10일 최종수 당시 과천문화원장은 도쿄에 있는 아키나오의 집을 방문해 그에게 학술대회 논문을 요청했고 다음해 방한을 약속받았다.

그런데 방문 이틀 뒤에 아키나오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는다. 추사 관련 자료 일체를 기증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상황은 급박해졌다. 이튿날부터 전화가 빈번하게 오갔고 기증 내용이나 절차에 관한 논의가 이어진다. 기증품 인수진행은 과천문화원에서 받기로 했다. 이듬해 인수팀이 일본을 방문했고 기증자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최종수 선생은 당시 아키나오와의 대화를 기억한다.

"이렇게 귀한 자료를 선뜻 내놓는 이유가 뭔지요?"

"일본의 대학에 기증을 하면 연구는커녕 도서관에서 먼지만 쌓인 채 파묻힐 겁니다. 조카(코마다 가즈코)에게 물려준들 완당(추사 김정희)을 전혀 알지 못하니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과천시는 추사연구를 꾸준히 해왔고 또 앞으로도 연구할 계획이 뚜렷하니, 부친도 만족하실 거예요."

아키나오는 이런 말도 했다.

"일본에는 유교가 없어졌는데 한국에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이번에 그걸 발견한 셈입니다. 한국인들이 이렇듯 자주 찾아주고 따뜻이 대해주는 것은 바로 유교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청나라 학자들과 글을 주고받으며 책과 학문을 받아들였지요. 그런데 일본은 완력을 이용해 책을 사오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있습니다. 책과 자료는 필요한 쪽에 있어야 하며 활용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을의 국제학술대회 때문에 놀라운 인연이 생겨났지만, 정작 아키나오는 대회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병상에 있던 그에게, 최 선생은 영상 한 장면만 촬영해줄 것을 권유했다. 아키나오는 몹시 힘들어하면서도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마지막 줄을 읽을 무렵엔 기침과 함께 호흡곤란이 찾아와, 최 선생은 괜한 부탁으로 위험한 순간을 맞지나 않을까 싶어 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기침이 진정되자 아키나오는 다시 가만히 말을 꺼냈다. "영혼이 방안에서 주위를 맴돌며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내일쯤 죽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조카딸에게 모든 책과 자료를 한국으로 꼭 보내라고 당부를 했다.
 

[코마다 가즈코의 편지. 2018년 4월 20일자로 최종수 선생에게 보낸 후지스카 아키나오의 조카 친필서한. 최근에 병세가 심해졌음을 말하고 있다. 이번 7월 4일 기일에 나오지 못한 것도 신병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방암은 치료를 했으나, 대상포진이 심해졌음을 밝히고 있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

 

[아키나오의 묘비에 술을 붓는 필자.]



# 기자동행기 - 그리고 12년과 오늘

아침 7시45분 김포공항에서 ANA항공편을 타고 도쿄로 날아갔다. 9시55분 도착한 하네다공항에는 도쿄한국학교 교장인 김득영 선생이 학교직원인 일본인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와 함께 네 사람은, 바로 하기야마 마을로 이동했다. 김 선생은, 차 안에서 한-일 문화교류에 대한 최근의 연구성과들에 관해 얘기를 꺼냈다. 일본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한반도 도래인의 자취, 특히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가야 포함) 사람들이 열도로 와서 지배층을 이룬 증거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기야마의 고다이라 공원묘지를 방문한 것은, 낮 12시 무렵이었다. 슈퍼에 들러 소흥주와 안주, 플라스틱컵과 향불을 피울 재료를 샀다. 그리고 묘지 인근의 추모물품 가게를 찾아(11년 동안 '거래'했던 이세야가 무슨 일인지 문을 닫아 다른 곳을 이용했다), 꽃을 샀다. 도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원묘지는 잘 관리되어 단아한 인상을 풍겼다. 이곳에선 공원묘지를 영원(靈園)이라 불렀는데, '넋의 뜰'이란 의미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물을 길어와 대리석 화분 자리에 꽃을 꽂고(여기선 조화와 생화를 함께 썼다), 향초에 불을 붙였다. 마침 태풍의 뒷바람이 남아 불을 지피기가 어려웠다. 한참이나 바람과 씨름한 끝에 마지막 남은 성냥 한 알로 겨우 불을 붙였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인연과 불꽃, 아키나오 앞의 향불이 그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최 선생은 최근에 발간한 추사 관련 책들을 가져와 묘비 앞에 늘어놓고 재배(再拜)를 했다. 추사 연구를 계속해달라는 아키나오의 당부를 떠올린 감회일까. 눈가가 촉촉해진 가운데 술을 따르고 다시 절을 했다. 이곳에선 무덤 앞에 술을 올리는 관습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식대로 예를 표하기로 했다. 최 선생은 묘비로 내려다보는 아키나오 선생에게 우리 일행을 조근조근 소개한 뒤 한참 서 있었다. 

최선생의 아키나오 묘원 방문은 국가적인 지원을 받는 일이 아니다. 개인 시간과 공력을 들여 해마다 해온 일이다. 과천문화원장에서 물러난 이후, 이 일은 더더욱 그의 '의무'에선 벗어난 것이다. 그의 아내는 이맘 때쯤이면 늘 같은 볼멘소리를 하신다. "아니, 나라나 과천 지자체가 해야할 일을, 왜 굳이 적지않은 돈을 들여가며 당신께서 하시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쪽에서는 알기나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는 정말 왜, 오래전에 돌아간 일본인을 길이 추념하는 것일까. 임종을 앞둔 아키나오가 베풀어준 문화적 도량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국가적으로 해야할 사례(謝禮)이지 한 개인이 감당할 보은은 아닐 것이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우선, 제가 좋아서 합니다. 돌아갈 때의 아키나오 선생, 그 따뜻하고 담담한 눈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문화를 아끼고 정신적 가치를 숭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제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녀야할 것 또한 일개 문화재가 아니라, 고양된 문화의식이라는 재산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해마다 아키나오를 만나러 오는 까닭은, 그런 가치있는 생각을 뵈러오는 것입니다."

 

[4일 도쿄한국학교에서 김득영 교장,최종수 선생과 함께 선 필자.(왼쪽부터)]



오후 3시 무렵, 우리는 도쿄한국학교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최 선생은 추사와 후지스카 집안의 인연에 대해 열강을 했다. 또한 아키나오의 결단의 순간에 대한 세세한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재일(在日) 한국인 학부모들은 한-일 문화교류의 놀랍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마치 직접 목도하는 듯한 표정으로 두 시간의 강의를 경청했다. 일본인과 한국인 개인의 문화열정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해냈는지 알게 되는 감동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하루 풀타임으로 뛰었던, 의미있는 일본행이었다. 이런 여행을 최 선생은 12년간 해오지 않았던가.
 

[완당선생(추사 김정희) 초상, 허련 작품]



#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지식인이며 예술가다. 금석학을 통해 서예의 경지를 터득하고 개척한 뛰어난 서예가이며 넘실대는 진경시대의 예술정신을 구현한 예인이다. 투철한 학문정신과 방대한 지식탐구로 당시 한-중-일 문화 흐름의 한 중심을 이뤘던, 글로벌한 대학자로 손꼽히기도 한다. 
 

[후지스카 지카시(과천문화원 제공)]



# 후지스카 지카시(藤塚鄰 1879-1948)는 도쿄대 중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문화학자이다. 호시노 호조에게서 청나라 경학(經學)을 배웠고 고증학을 바탕으로 옛책들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일에 힘을 쏟았다. 또 열성적인 자료 수집가이기도 했다. 청나라의 옹방강과 완원, 그리고 조선의 추사 김정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두 나라의 학문이동에 대한 논문을 썼다. 지카시는 서울 종로구 충신동 27번지 망한려(望漢廬)라고 자칭한 집에 거주하기도 했다. 망한려는 북한산을 바라보는 오두막집이란 뜻이다. 
 

[후지스카 지카시(오른쪽)와 아키나오 부자.(과천문화원 제공)]



# 후지스카 아키나오(藤塚明直, 1912-2006). 후지스카 지카시의 아들로, 부친이 경성제대에 근무할 때 한국서 5년간 생활했다. 경성공립중학교 졸업생이기도 하다. 그는 도쿄대 중국철학과를 졸업해, '황청경해(청나라 고전연구 총서)'에 관해 논문을 썼다. 2006년, 자신이 어려울 때도 결코 팔지 않고 소장해온 귀중한 추사자료들을 모두 과천시에 기증했다.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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