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령으로 철퇴를 맞은 중국 통신장비기업 ZTE(中興) 회장직을 비롯한 이사회 전원이 새롭게 교체됐다. ZTE는 29일 광둥성 선전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어 리쯔쉐(李自學) 신임 회장 등 이사 8명을 선출했다고 매일경제신문(每日經濟新聞) 등 현지 언론이 30일 보도했다. ZTE의 새 경영진에겐 위기에 빠진 회사를 회생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 이사회 14명 사임···새 사령탑 선출
이날 주주총회에서 ZTE의 새 사령탑으로 선출된 리쯔쉐 신임 회장은 소감에서 "제재령은 아직 해제되지 않았다"며 "우리가 할 일은 회사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재령이 해제되면 이른 시일 내에 회사 경영생산이 정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1964년생으로, 시안교통대 전자학과를 졸업한 그는 시안마이크로전자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시작해 당서기, 부소장직까지 올랐다.
중국 베이징 유력일간지 신경보(新京報)는 리쯔쉐 신임 회장이 ‘화산분출구(火山口)’에 앉았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리 신임 회장이 ZTE를 회생시켜야 할 어려운 중책을 맡았다는 의미다.
인이민(殷一民) 회장을 비롯한 기존 이사회 구성원과 경영진 14명은 이날 전원 사임했다. 인이민 전 회장은 "새로 선출된 이사회는 회사가 난관을 극복하는 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며 "그들에 거는 기대감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 '쇼크'에 빠진 ZTE
이번 이사진 교체는 앞서 미국 상무부와의 협의에 따른 것이다. 지난 4월 중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대북·대이란 제재를 위반하고 이에 따른 이행 조치를 지키지 않은 ZTE에 대해 미국 기업과 7년간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했다. 이에 따른 충격파로 ZTE 주식은 선전·홍콩거래소에서 지난 4월 17일부터 약 두달간 거래가 중단됐고, ZTE 생산·경영은 거의 중단됐다. 인이민 전 회장은 당시 회사가 ‘쇼크’상태에 빠졌다고 우려했을 정도다.
ZTE는 제재령을 해제하기 위해 14억 달러의 벌금을 내고, 30일 이내 고급 부총재급 이상 경영진 전원을 교체하고, 회사 내부에 미국인으로 구성된 준법팀을 운영하는 등의 '굴욕'적 내용에 미국 상무부와 합의했다.
이로써 지난 13일 선전·홍콩거래소에서 ZTE 주식 거래는 두달 만에 재개됐다. 하지만 선전거래소에서 ZTE 주가는 7거래일 연속 하한가 행진을 이어갔다. 주가는 거래 중단 직전의 주당 31.2위안에서 29일 종가 기준 13위안까지 절반 이상 폭락했다. 시가총액은 700억 위안(약 11조7000억원) 증발했다.
◆ '자금난 해소' 급선무
ZTE의 새 이사진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회사 자금난 해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제재령으로 인한 ZTE 손실이 엄청나다고 지적했다. 앞서 블룸버그 통신도 ZTE가 미국 정부 제재령으로 31억 달러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이번에 미국 상무부와 협의를 통해 14억 달러 벌금을 선고받은 ZTE는 지난해 3월에도 미국 정부로부터 8억9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아 납부한 바 있다. 미국 정부에 바친 벌금 액수만 모두 합치면 22억9000만 달러다.
자금난 해소를 위해 ZTE는 이날 주주총회에서 중국은행과 국가개발은행으로부터 각각 300억 위안, 60억 달러, 한국 돈으로 총 11조원의 크레디트라인을 설정하는 안도 통과시켰다. 크레디트 라인은 미리 정한 한도 내에서 고객이 수시로 자금을 빌려 쓰고 갚을 수 있도록 한 대출을 말한다.
회사 자금난 속에 이날 주주총회에서 총 13억 위안에 달하는 2017년 현금배당안은 부결됐다. 인이민 전 회장은 "13억 위안 배당금이 회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미국 제재령 속에서 약간의 현금이라도 꼭 필요한데 써야 한다"며 현금배당 지급에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현재로선 미국 정부의 ZTE 제재령이 언제 해제될지도 불확실하다. 이달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상무부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대가로 ZTE 제재를 풀어주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해진 것. 제재 해제에 반발한 미국 상원이 최근 ZTE 제재 해제를 무효화하는 내용을 담은 국방수권법을 통과시키면서다.
게다가 미국 하원이 28일(현지시간) 국방지출안을 통과시켰는데 여기에 국방부가 ZTE와 또 다른 중국 통신장비기업인 화웨이의 제품을 구매하지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미국의소리(VOA)가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