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초대형컨테이너선 20척을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에 발주키로 하면서 조선·철강·해운 트라이앵글의 상생이 본격화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해운 재건을 통한 공생적 산업생태계 구축'이라는 정부 목표도 한 걸음 더 현실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우·삼성·현대 '빅3' 분산 발주 "환영"
4일 국내 조선 3사는 현대상선의 이번 발주를 두고 '가뭄의 단비'라고 총평했다.
현대상선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 각각 2만3000TEU급 7척과 5척, 현대중공업에 1만4000TEU급 8척 등 총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키로 결정한 바 있다.
실제 최근 이들 3사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일감부족에 허덕이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특히 컨테이너선 수주 실적이 좋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올해 들어 지난 5월 처음으로 4368억원 규모의 4척을 수주했다.
각사들이 구체적인 수주 현황을 밝히고 있진 않으나 업계에선 모두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련업계에선 이번 발주가 빅3에 골고루 분산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애초 현대상선이 정한 납기일을 채우기 위해 한 곳에 몰아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음에도, 형평성 및 효율성을 최대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김태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실장은 "정부가 지향하는 것이 해운·조선 상생이기 때문에 파급효과를 고려한 듯한 모양새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상선 역시 각 조선사들이 제안한 납기와 선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했고, 자체 평가위원회 및 투자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국조선플랜트협회 관계자는 "3사의 기술력은 대형컨테이너선들의 경우 크게 차이가 나질 않는다"며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에 1만4000TEU 8척을 몰아준 것은 한 번에 설계해 찍어내는 식으로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해운·철강, 수혜 기대
해운사는 운송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선박을 조선사에 발주하고, 조선사는 신조(新造)에 필요한 후판 등을 철강사로부터 공급받는다. 해운업이 기간산업으로 불리는 이유다. 특히 해운은 물류, 항만, 수산, 해양개발업 등 해양산업과도 연결돼 있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는 '해운강국 건설'을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해운업 육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핵심 목표는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업 육성을 통한 조선·수출입 산업과 상생협력'으로 잡았다. 해운업을 키워 관련산업에 그 효과가 퍼지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적취율(우리나라 화물을 우리 선사에 싣는 것)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국적 선사의 적취율이 높아지면 해운사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발주 여력이 커진다. 해운→조선→철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업계에선 그 단초가 이번 현대상선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인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수주를 맡은 조선 3사가 아예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박 신조에 들어가는 강재(후판) 가격이 오름세인데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율이 1300원일 경우 1억 달러를 수주하면 1300억원을 받을 수 있지만, 1000원이면 1000억원밖에 못 받는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조선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이번 현대상선 수주는 선종별로 각각 7척, 5척, 8척 등을 만들어내는 이른 바 '시리즈 선박'(한 번 설계로 찍어내듯 신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철강사에 요구하는 사이즈도 같아 구매시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면서 "이는 엔진, 기자재 등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실제 원가 상승 요인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다만 이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국적 선사인 만큼 원화 결제 가능성도 물론 있다"면서 "이런 자세한 계약 내용들은 본 거래 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