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미래를 좌우할 북·미정상회담이 내달 12일로 예정되면서 한반도 주변국의 움직임도 한층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화되는 일명 ‘차이나패싱’, ‘재팬패싱’ 우려에 휩싸인 중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40여일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두 차례나 만나 깜짝 회담을 나눴다. 북·미정상회담 개최일이 결정된 이후에는 북한 고위급 인사가 중국을 방문해 북·미회담 추진 상황을 중국 당국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9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성균중국연구소 초청간담회 ‘한반도 정세 변화와 중국’의 발표자로 나선 정지융(鄭繼永·정계영) 중국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 한국조선연구중심 주임과 김용현 동국대 사회과학대학 북한학과 교수(정치학 박사)는 한반도 평화 안전 유지 과정 속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최근 한반도 정세가 평화적으로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예고 없이 방문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또 이는 중국이 한반도 당사자는 아니지만, 한반도 정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용현 교수도 북·미 간 큰 틀에서 비핵화 합의가 이뤄져도 이후 이행과정은 샅바 싸움과 험난한 길이 전개될 것으로 내다보며 중국을 제외하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국은 처음부터 한반도 문제에서 상수 역할을 했다. 남·북·미로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라며 “남·북·미 나아가 남·북·미·중의 관계가 빨리 정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한반도 문제 해결의 첫 출발을 남·북·미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남·북·미·중으로 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트럼프 입장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데 중국이 관여하는 것을 꺼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고, 중국 시 주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 주임은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의 깜짝 회담을 언급하며 중국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받쳐주는 ‘바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북과 북·중정상회담 이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의 땅값을 묻는 평양 부동산 업자들의 전화, 평양에서 어떤 투자 사업을 할 기회가 있느냐고 묻는 전화 등 매일 수십 통의 문의를 받는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한반도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고 향후 북·중 관계가 지금보다 한층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정 주임은 가장 먼저 북한의 김정은 정권 안정화가 한반도 정세를 변화시킨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또, 북한이 핵 경제 병진에서 경제로 전환한 것이 한반도 정세 흐름에 영향을 줬다고 봤다.
집권 초기 김정은은 원로 세력의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자신을 신뢰하는 젊은 세력을 기반으로 한 비서실 구성으로 힘을 얻으면서 김정은은 자신감을 얻었다.
정 주임은 “북한 사람들이 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심지어 북한 군(軍) 인사들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만 하고 바로 돈벌이(사업)에 관한 내용을 물어본다”며 “김정은은 이들의 성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를 위해 북한이 비핵화로 방향을 바꾼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은 북한 무역액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지원은 현재 경제 성장을 주요 목표로 삼은 북한에는 필수 요소로 작용한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과거와 달리 현재 중국은 막강한 실력을 갖췄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중국이 북미 간 신뢰가 형성되는 기반을 제공하는 방안은 논의할 수 있다”고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정 주임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천장’ 역할을 하고 있다면,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받쳐주는 ‘바닥’ 역할을 한다”며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하고,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위해선 중국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중국이 대화와 외교수단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강조했고, 4자회담·6자회담 등 시의적절하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중국이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에 찬성하고 제재를 이행해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행위에 강력하게 대응했다는 것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현재 상황은 북한과 미국이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다. 한국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고, 일·중·러의 역할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북·미가 떨어지지 않게 지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반도 주변국이 하나의 목표를 두고 이를 추진하는 것에 동의했지만, 상호 신뢰 관계가 아니므로 북·미정상회담에서 좋은 성과가 나오도록 한·일·중·러 최고 지도자들이 이를 위해 모든 역량을 펼쳐야 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정 주임은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한반도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고, 러시아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이 통상 문제 등으로 중국을 너무 압박하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한반도 정세를 나쁘게 변화시키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에 주변국들은 천천히 시간을 갖고, 신중하고 협력적인 자세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