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김기식 금감원장이 취임 일주일 만에 사퇴론에 휩싸이며 애초 계획했던 금융개혁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김기식 사퇴론은 정치권에서부터 쏟아졌다. 실제로 야당에서는 김 원장에 대한 의혹을 무더기로 제기하고 있다. 외유성 출장, 여비서 특혜 승진, 국회의원 시절 후원금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금감원장 리스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흥식 전 원장은 채용비리로 얼룩진 금감원을 개혁하겠다며 임원진 전부를 물갈이 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본인의 채용비리 의혹이 드러나면서 불명예 퇴진을 했다.
그런데 이번 금감원장 논란은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이 아닌 정치권 문제로 확전됐기 때문이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여야 간 갈등으로 확산돼 연일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내로남불을 얘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금융개혁을 좌초시키려는 계략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김 원장이 금감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금융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 시절에 저승사자로 통했던 그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와 재벌개혁에 발벗고 나설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김 원장은 지난 2일 취임식에서도 "감독당국인 금감원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통해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권위와 위상을 확립하겠다"고 공언했다.
금감원 내부의 기대감도 컸다. 금감원의 독립성을 제고하고 본래 기능인 감독 역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했다. 임직원들의 사기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제 금융권은 김 원장을 두려움이 아닌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금감원장으로서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얽혀 있는 문제를 덮으려고 의도적으로 저런다"는 식이다. 전일 금감원이 검사에 착수하기로 한 신한금융그룹 채용비리 사건은 물론이고, 삼성증권의 공매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물타기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국민들의 불만도 높다. 김 원장이 해명하는 '관행'이 금융사들의 '관행'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채용비리나 가계대출에 의존한 영업을 비판하며 관행을 뜯어고치라고 하는데 "김 원장이야 말로 잇단 의혹에 대해 관행이라고 해명하니 누가 누구에게 관행을 고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금융권에서는 김 원장이 의혹 돌파용으로 '금융개혁'이라는 칼날을 들이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금융사 직원은 "금감원장이라는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이런저런 개혁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금융사에 으름장을 놓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김 원장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든 아니든 금감원의 권위가 다시 한 번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금융개혁의 칼을 뽑기도 전에 주저앉을 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