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 위에 모습을 드러낸 민유라와 알렉산더 겜린. 한복 저고리를 개량한 연분홍색 상의와 한복 치마를 변형한 진분홍색 하의를 입은 민유라와 역시 개량한복을 연상시키는 하늘색 상의와 짙은 푸른색 바지를 입은 겜린은 한국인의 정서를 그대로 의상에 담았다.
배경음악 소향의 ‘홀로 아리랑’의 선율에 맞춰 애절함이 묻어나온 눈빛과 표정, 손끝부터 발끝까지 전해진 민유라와 겜린의 가슴 뭉클한 연기에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던 관중들도 함께 호흡하며 울었다. 은반 위에 펼쳐진 한 폭의 한국 무용이었다.
민유라-겜린 조는 한국 선수로는 올림픽 최초로 아이스댄스 프리댄스에 진출해 환상적인 ‘클린 연기’를 선보이며 기술점수(TES) 44.61점, 예술점수(PCS) 41.91점을 합쳐 86.52점을 받았다. 쇼트댄스 점수 61.22점을 합친 총점 147.74점으로 프리댄스 연기를 한 20개 팀 가운데 18위를 기록했다. 한국 아이스댄스 올림픽 최고 성적이었다.
민유라와 겜린은 올림픽 시즌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리랑’의 낮은 인지도를 우려해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둘은 ‘아리랑’을 고집했다. 민유라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 겜린은 미국 태생의 귀화선수다. 둘은 단지 “전 세계에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꼭 프리댄스에 진출해 ‘아리랑’을 연기하는 것이 목표”였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원곡 ‘홀로 아리랑’의 가사 속 ‘독도’ 구절이 정치적 논란을 우려해 3초간 삭제되기도 했지만, 둘의 감동적인 연기에 그 어떤 방해요소도 될 수 없었다.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아리랑’을 울린 민유라와 겜린은 이날 연기를 마친 후 “우리가 고집한 ‘아리랑’을 올림픽까지 와서 연기했다는 것이 만족스럽다”고 환하게 웃으며 “팬들의 응원이 너무 좋아서 정말 쉽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음악이 클라이맥스로 향할 때 나도 큰 감동을 느꼈다”고 울컥했다. 한복 의상이 무척 잘 어울린 겜린도 “태극기를 달고 스케이트를 타는 기분이었다”며 “이걸 입음으로써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관객과 공유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감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