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신소비' 만개한 中…"소비 질 향상" VS "대중 일상 볼모화"

2018-02-2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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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만으로 일상생활 영위, 새 소비문화 정착

IT공룡 끝없는 영토확장, 정부 정책지원 합작품

新성장동력 각광, 불공정경쟁 폐해 우려 지적도

지난 11일 장융(張勇) 알리바바 CEO가 중국 최대 가구업체인 쥐란즈자 지분 15%를 94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며 투자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알리바바 제공]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여성 황쥐(黃菊)씨는 휴일인 토요일 오전 노트북을 열고 온라인 의료서비스 제공 사이트인 딩샹위안(丁香園)에 접속했다.

그녀는 진료 예약을 한 내과 전문의와 최근 들어 잦은 속쓰림의 원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약 처방을 받았다.
오후에는 남편과 함께 시내에 새로 문을 연 가구 인테리어 매장 '홈타임스(HomeTimes)'를 찾았다. 테마별 진열 공간 중 '프랑스식'을 골라 가상현실(VR) 기기로 제품을 체험한 뒤 스마트폰 앱으로 구매했다.

월요일 아침 늦잠을 잔 황씨는 차량 공유 서비스인 디디추싱(滴滴出行) 덕분에 지각을 면했다. 대도시인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달리 2선 도시인 항저우는 출퇴근 시간대에도 차량 흐름이 원활하다.

수요일 야근 때는 음식 배달 앱인 어러머(餓了麽)로 한국식 비빔밥을 주문해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그녀는 매주 평균 점심 4회, 저녁 2회를 배달 앱에 의존한다.

금요일 퇴근길에 대형 신선식품 매장인 차오지우중(超級物種)에 들러서는 RFID(무선주파수인식) 태그를 스캔해 유통 경로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다음 주에 먹을 분량의 식자재를 샀다. 구매한 물품은 집으로 배송해주기 때문에 매장 근처의 공유 자전거 오포(ofo)를 타고 편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다시 찾아온 토요일. 황씨는 오는 9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위해 미국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맞춰 온라인으로 1대1 영어 수업을 진행하는 브이아이피키드(VIPKID)에 가입했다.

남편과 딸이 외출을 한 일요일 오후. 모바일 쇼핑몰인 웨이핀후이(唯品會)에서 미리 점찍어둔 의류와 화장품 등을 구매한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중국을 강타한 '신(新)소비' 트렌드가 바람을 넘어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이 같은 삶의 방식이 가능해진 건 알리바바와 텐센트, 쑤닝 등 IT 공룡들의 끊임없는 사업 영토 확장 때문이다.

황씨가 일주일간 이용한 온·오프라인 매장 모두 이들 기업의 계열사이거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곳이다.

모바일 등 IT 기술에 기반한 소비 대열에 합류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중국식 신소비의 지속적인 확산 가능성을 높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려도 있다. 중국인은 의·식·주와 더불어 외출을 위한 이동수단을 뜻하는 '행(行)'까지 포함한 4가지를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중국인의 일상이 모바일에 갇힌 채 IT 공룡들의 볼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래픽=이재호 기자]

 

◆ 쌍마(雙馬), 中정부 업고 신소비 전도사 자처

지난 11일 알리바바가 중국 대형 가구업체인 쥐란즈자(居然之家)의 지분 15%를 54억5300만 위안(약 9400억원)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이번 투자로 알리바바는 쥐란즈자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앞서 지난 2일에는 텐센트가 남성용 의류 전문업체인 하이란즈자(海瀾之家) 지분 5.31%를 25억 위안(약 4200억원)에 인수했다.

춘제(春節) 연휴를 앞두고 이뤄진 두 건의 대규모 투자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중국 IT 공룡들의 온
·오프라인 통합 행보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지난 2014년부터 수백 건의 인수·합병(M&A) 및 지분투자를 통해 앞서 언급한 의·식·주·행을 아우르는 가치사슬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음식 배달 시장을 양분하는 어러머와 메이퇀(美團)은 각각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거액을 투자한 업체다. 차량 공유 시장을 석권한 디디추싱 역시 두 기업이 공동 투자했다.

알리바바는 쥐란즈자 지분 확보와 자체 브랜드인 홈타임스 론칭으로 가구·인테리어 시장 공략에 나섰고, 텐센트는 지난해 4월 중국 최대 부동산 중개업체인 롄자(鏈家)에 30억 위안(약 5040억원)을 투자했다.

알리바바 회장인 마윈(馬雲)과 텐센트 회장인 마화텅(馬化騰)을 일컫는 '쌍마'가 중국 인구 14억명의 일상을 장악했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는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중국 국무원은 2015년 기존 소비 방식의 질적 고도화를 의미하는 '신소비 의견'을 발표한 이후 관련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바링허우(1980년대 출생자)와 주링허우(1990년대 출생자)로 대표되는 새로운 소비계층의 출현과 IT 기술 발전에 부합하는 신소비 문화 정착이 핵심이다. 젊은 층의 인지도가 높고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알리바바나 텐센트 등이 수혜자일 수밖에 없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대한 소비부문의 기여율은 58.8%로 집계됐다. 이를 선진국 수준인 70%로 끌어올리려면 소비 주도의 경제성장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중국 정부의 역점 과제다.

◆ 남녀노소 안 가리고 다 잡는다

온·오프라인 통합 시도는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텐센트가 '남성의 옷장'으로 불리는 하이란즈자 투자에 나선 건 남성 소비자 잡기의 일환이다.

텐센트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온라인·모바일 게임 분야도 남성 소비자의 구매 비중이 압도적이다.

황씨의 사례에서 소개된 여성 전문 쇼핑몰 웨이핀후이는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다가 지난해 말 텐센트와 징둥(京東)에 매각했다.

알리바바는 중국의 고령화 사회 진입과 노년층 의료 수요 급증을 감안해 헬스케어 사업을 담당할 알리바바헬스를 설립하고 홍콩 증시 상장도 이뤘다. 가입자 1000만명과 의료진 회원 200만명을 거느린 중국 최대 온라인 의료서비스 제공 업체인 딩샹위안은 텐센트의 투자를 받았다.

유아·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사업 진출도 활발하다. 텐센트는 VIPKID(2억 달러)를 비롯해 지난해에만 7개 업체에 4억 달러가량을 투자했다.

중학교 영어교사 출신인 마윈의 알리바바는 지난해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15년간의 교과과정을 온라인으로 학습할 수 있는 '윈구학교(雲谷學校)' 서비스를 시작했다.
 

텐센트가 투자한 중국 최대 온라인 의료서비스 제공업체 딩샹위안(왼쪽 사진)과 알리바바의 온라인 교육서비스 윈구학교 홈페이지 캡처. [사진=딩샹위안·윈구학교 홈페이지]


◆ 곳곳서 독과점 후유증··· 보완 필요 지적 

온라인 경제의 발달에도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구매 수요 역시 상당하다. 식품과 의류 등이 특히 그렇다.

중국 IT 대기업들이 성장동력으로 삼은 온·오프라인 통합도 오프라인 매장 확보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난달 29일 중국의 대표적인 부동산 개발업체인 완다그룹은 340억 위안(약 5조7100억원)을 받고 계열사인 완다상예(萬達商業) 지분 14%를 텐센트와 쑤닝, 징둥 등 IT 기업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완다상예는 중국 내 235개 쇼핑몰을 운영하는 유통기업으로 연간 방문자 수만 32억명에 달한다. 텐센트 등은 이를 토대로 온·오프라인 통합 실험에 나선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 제공으로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알리바바도 지난 4년간 600억 위안(약 10조원)을 쏟아부어 인타이(銀泰), 싼장(三江), 허마셴성(盒馬鮮生) 등 쇼핑몰 및 대형 슈퍼마켓 체인의 지분을 사들였다. 추구하는 방향은 텐센트와 같다.

이 같은 무차별적 사업 영역 확장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독과점은 필연적으로 불공정 경쟁과 소비자 부담 가중으로 이어지는 탓이다.

실제 온라인 쇼핑몰 시장 2·3위인 징둥과 웨이핀후이가 1위인 알리바바를 불공정 경쟁 혐의로 제소하는 이전투구가 벌어지는가 하면 메이퇀 등 대형 음식 배달 업체는 법원으로부터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뉴스앱 서비스 스타트업인 진르터우탸오(今日頭條)가 또 다른 IT 공룡인 바이두를 법원에 제소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바이두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시장 진입을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중국 매체 제일재경(第一財經)은 "업계 1위가 다른 모든 기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가는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며 "1위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관련 규제의 부재가 IT 대기업들의 시장지배권 남용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며 "불공정 경쟁 행위가 온라인 경제에 미치는 해악이 큰 만큼 법규를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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