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금융당국의 과징금 징수가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법제처가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 외에도 신세계, 빙그레 등 일부 대기업 등이 차명계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12일 법제처에서 이같은 내용의 법령해석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의견과 맥을 같이 한다. 혁신위는 지난해 12월 "금융실명제 이전에 만든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그 이후 개설된 차명계좌에도 과징금을 부과하는 입법안을 적극 검토하라"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그동안 주민등록상 누군가의 명의이면 실명계좌라는 의견을 견지하며, 현행법상 과징금 부과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자 금융위는 이후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요청했고 이같은 결과를 회신한 것이다.
현재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는 15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금융감독원이 12일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 소속)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 전수조사 결과,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총 1229개이다. 여기에 경찰이 이 회장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면서 밝혀낸 차명계좌 260개를 더하면 1500개에 육박한다. 2008년 삼성특검과 2012년 이맹희 회장과의 상속 분쟁을 통해 차명계좌가 밝혀졌고 용도도 조세포탈로 확인됐다.
이 회장 말고도 5~6곳 기업이 차명계좌 문제에 얽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신세계, 빙그레, CJ, 동부 등이 거론된다"며 "다만, 이들 기업은 차명계좌가 조세포탈 목적 용도로 확정이 났는지 명확하지 않아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위와 국세청이 향후 과징금 징수 과정에서 실무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차명계좌와 얽힌 금융기관들의 불만이 상당할 전망이다. 소득세법상 차명계좌가 개설된 은행 등 금융기관이 원천징수를 한 뒤 국세청에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후 금융기관은 차명계좌의 실소유주에 구상권 청구 절차를 밟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원천징수자인 금융기관이 향후 어떻게 할지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며 "당국에서 관련 금융기관에 안내장을 1차적으로 돌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국세청의 협업도 필수다. 두 기관이 보유한 자료를 바탕으로 앞으로 발생할 실무적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금융실명제 실무운영상 변화에 대응하고자 국세청·금감원 등 관계기관과 공동 태스크포스를 구성·운영해 대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