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웅 수원시 갈등조정관이 수원시의 공공갈등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중근 기자]
경기 수원시청 조직에 독특한 직책이 하나 있다. 시민소통기획관실 소속의 ‘갈등조정관’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당연히 있어야 할 직책인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 사회는 유달리 갈등이 심하다. 대표주자격인 ‘공동주택 층간소음’을 비롯해 주차문제, 애완견, 일조권이나 조망권, 혐오시설 입지 분쟁 등 ‘이웃분쟁’이 폭증하고 있다.
갈등관리가 안되면 다툼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소송 공화국’이 됐다. 인구 대비 소송률이 일본의 10배에 달한다. 3세판 항소율 최고(‘끝까지 간다’는 의미), 소송 만족도 최하, 소송비용 증가, 관계 단절 심화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최고인 125만명 인구를 가진 수원시에도 숱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층간소음 같은 개인 간 갈등은 물론이고 '수원 군 공항 이전사업'·'화성시 장사시설 건립 반대 민원'·'광교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민원' 등 공공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공공갈등은 14건에 이른다.
수원시가 ‘갈등조정관’ 직제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시는 갈등관리 전문가를 지난해 11월 15일 채용했다. 직급은 6급.
이제는 수원시 공무원이 된 황인웅 갈등조정관은 원래 노조활동가 였다. KT 노조에서 전문 활동가로 5년간 일했다. ‘이슈 파이터(Issue Fighter)’였다. 이슈를 제기하고 싸웠다. 그러니까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일이었다.
당시 사측에서 맡긴 용역을 수행하던 김 모 교수와는 늘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그 김 모 교수가 몇 년 뒤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이 미국에서 1년간 배우고 온 ‘대안적 분쟁해결(ADR·Alternative Disputes Resolution)’을 거론하며 같이 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고민 끝에 의기투합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비영리단체인 (사)한국갈등해결센터다. 노무사 100여명도 합류했다. ‘악연’이 ‘인연’으로 변하면서 황 조정관의 운명도 바뀌었다. ‘갈등 조장가’에서 ‘갈등 해결사’로 변신했다.
2015년 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가 확산되면서 모든 교육이 취소됐다. 한국갈등해결센터는 기나긴 개점휴업상태에 돌입했다. 박봉이지만 ‘소명(召命·calling)’으로 여겼기에 즐겁게 생활했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인터뷰 도중 걸려온 전화에 응대하느라 컴퓨터를 보며 전화 상담을 하고 있는 황인웅 갈등조정관. [사진=김중근 기자]
"5년간의 한국갈등해결센터 근무와 대구에서의 2년간 활동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이해가 첨예하게 다르더라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름을 진심으로 인정하면 통하기 마련입니다."
그는 "수원에서의 지난 3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녔다"며 소회를 밝혔다. 관계자들을 만나고, 의견을 듣고, 갈등의 본질을 파악하고, 조정방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공공갈등관리심의위원회(2016년 3월 구성) 심의 회의 참석, 갈등관리전문가 자문회의 개최, 사업추진부서 실무자 검토회의 등을 통해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다.
황 조정관의 첫 작품이라고 할 있는 ‘수원형 참 쉬운 갈등관리 매뉴얼’이 오는 3월 발간될 예정이다. 매뉴얼이 나오면 2018년 갈등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게 된다.
황 조정관이 한국갈등해결센터에서 근무하던 2010년, 이제는 고인이 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로부터 자필 글귀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그때 받은 '다름을 인정하면 통합니다'는 글귀는 인생 이정표가 됐다.
"수원시는 저에게 매일 기분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시민 참여와 시민의 정부를 강조하는 수원시의 정책이 제가 추구하는 바와 너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이 참여하고 시민이 권한을 갖는 정부는 민주주의와 갈등관리의 기본 원리입니다.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마당이 제 앞에 펼쳐진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황 조정관은 갈등관리 체계의 4대 핵심 가치로 ‘참여’와 ‘숙의’, ‘신뢰’와 ‘지속가능 발전’을 꼽는다. 시민과 이해관계자의 실질적 참여 보장(참여), 정보 공개와 공유 및 사실 관계 확인(숙의), 일관성 있는 대응을 통한 시민 신뢰 확보(신뢰), 미래세대와 비계량(非計量) 가치 고려(지속가능 발전)로 부연 설명이 가능하다.
그는 1975년생이니 아직 젊은 편이다. 짧은 만남에도 열정이 넘쳤다. '자신의 일을 뼛속까지 소명으로 여긴다'는 말속엔 전문가의 면모도 보였다.
조정해야 할 난제가 산적한 수원시에 둥지를 튼 황 갈등조정관의 역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