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라는 대어를 놓쳤던 홍콩증권거래소가 미래 성장동력인 혁신기업 유치를 위해 대대적인 기업공개(IPO) 기준 완화를 결정했다.
홍콩증권거래소가 15일 변호사, 회계법인, 펀드매니저 등 360여명의 관계자와 협의한 끝에 신(新)경제 기업을 대상으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상장을 위한 시총 및 매출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음을 밝혔다고 매일경제신문(每日經濟新聞)이 18일 보도했다.
이는 지난 1993년 홍콩증권거래소 H주가 개장한 이후 가장 파격적인 완화 조치로 뉴욕거래소, 상하이거래소 등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기 위한 과감한 행보로 풀이됐다.
앞서 홍콩거래소는 '1주 1표' 원칙을 고수하다 알리바바를 놓쳤다. 알리바바는 2013년 초부터 홍콩 상장 의사를 보이며 차등의결권 적용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고 1년여간 협상이 성과가 없자 결국 2014년 9월 미국 뉴욕거래소에 안착했다.
차등의결권은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 주식에 보통주보더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차등의결권이 있는 주식은 보통주의 10~100배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 경영권 방어에 유용하다. 홍콩거래소는 최대 10배 의결권 부여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시가총액 400억 홍콩달러 이상이었던 상장 조건도 완화할 계획이다. 시총 100억 홍콩달러 이상, 연간 매출 10억 홍콩달러로 기준을 낮춘다. 바이오 기업의 경우에는 과거 수익이 없더라도 상장시점 기준 시장가치 15억 홍콩달러 이상이면 상장이 가능해진다.
실제 적용은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리샤오자(李小加) 홍콩거래소 총재는 "신규 규정은 당국의 승인을 거쳐 내년 중순에 제정되고 이후 시장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리 총재는 "시장이 크게 변했고 이제 달라질 시기"라며 "이미 대형 기업을 놓쳤지만 아직 많이 늦지 않았다"고 기대감도 보였다.
중국 대표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샤오미, 중국 최대 P2P(개인 간) 온라인 대출 플랫폼인 루진숴(陸金所·루팩스), 알리바바의 금융관계사로 알리페이(즈푸바오) 전담업체인 마이진푸(螞蟻金服·앤트파이낸셜), 텐센트뮤직 등 신흥 IT '거물'이 내년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은 이들 기업을 놓치지 않겠다는 포부다.
최근 홍콩거래소는 중국 시장과의 연계로 급성장했고 이와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변화의 압박도 커진 상태다.
홍콩 자본시장의 번영은 지난 10년간 중국 경제와 연계성을 꾸준히 확대해온 영향이다. 지난 20여년간 홍콩은 글로벌 금융도시로 입지를 유지해왔고 홍콩거래소의 시총은 790% 불어났다. 2006년부터 올해 5월까지 홍콩 증시에서의 중국 상장사 비중은 50.3%에서 64.0%로 늘었다. 2011년~2016년 중국 본토 IPO는 홍콩 시장 전체의 60%, 조달액은 전체 조달액의 91%에 육박한다.
하지만 홍콩의 제도가 중국 경제의 성장속도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디지털 경제가 중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았지만 홍콩 증시는 중국 하이테크 기업에 제대로 문을 열지 않고 있다는 것. 지난해 기준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디지털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30.3%에 달했다.
신경제 기업의 범위에 대한 관심도 크다. 홍콩거래소는 "신경제 기업은 신흥산업과 혁신산업의 고성장 기업을 말한다"고 밝혔다. 홍콩거래소는 신기술·혁신이념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성공한 기업, 연구개발(R&D) 지출 비중이 큰 기업, 자체 특허와 지적재산권으로 성공한 기업, 유형자산에 비해 기업 시장가치와 무형자산 가치가 높은 기업 등을 혁신 기업으로 정의했다.
당초 논의됐던 스타트업 전용 증권시장인 창신(創新·혁신)판 개설은 부결됐다고 신경보(新京報)가 18일 보도했다. 거래소 측은 "메인보드와 창업판 외에 혁신판을 개설하면 불필요한 리스크가 커지고 시장구조가 복잡해질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대다수의 상장사는 메인보드 상장을 원해 혁신판이 우수기업을 유치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철회 배경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