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9일 75일 만에 '도발 침묵'을 깨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추정되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다시 요동칠 전망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3시 17분께 평안남도 평성에서 '화성-14형 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고각으로 발사된 이 미사일은 50여분간 고도 약 4500㎞까지 올라갔다가 약 960㎞를 비행했는데, 고도만으로 놓고 보면 가장 높이 날았다.
정상 각도로 발사했을 때 최소 9000㎞에서 최대 1만3000여㎞에 달하는 것으로,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를 비롯해 동부까지 타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이날 발표한 정부성명에서 "조선로동당의 정치적 결단과 전략적 결심에 따라 새로 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방송이 전했다.
성명은 이어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무기체계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의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이라며 "지난 7월에 시험 발사한 화성-14형보다 전술 기술적 재원과 기술적 특성이 훨씬 우월한 무기체계"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ICBM급으로 보이는 미사일 발사에 나선 것은 우선 재진입 기술 등 기술적 보완 측면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 55분간 주재하고 "대륙 간을 넘나드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완성된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며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여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거나 미국이 선제타격을 염두에 두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가 미국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면서,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와 일련의 유엔안보리결의에 따라 단합되고 강력한 제재와 압박 조치를 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또다시 장거리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데 대해 강력하게 규탄했다.
또한, 양 정상은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에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는 한편,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계속해 나감으로써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나가자고 말했다.
한·미·일이 유엔 안보리 소집을 즉각 요청한 가운데, 미국은 안보리에서 대북 유류 공급에 추가적인 제약을 가하는 등의 고강도 추가 제재 결의를 도출하려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러와의 이견으로 고강도 안보리 제재 도출이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국은 북한과 거래한 중국 등 제3국 기업들을 제재하는 '세컨더리보이콧' 카드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대북 제재 움직임에 북한은 추가적인 도발로 맞설 가능성이 커 보여 내년 2∼3월 평창 동계 올림픽·패럴림픽을 국면 전환의 중대한 계기로 만들어 보려던 우리 정부의 구상도 일단 시련에 봉착했다.
한편, 이날 북한의 ICBM급 발사 소식에도 원·달러 환율이 급락해 2년 반 만에 장중 최저를 기록하는 등 외환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오히려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는 달러화에 견줘 떨어졌다. 국내 증시도 상승폭이 크지 않은 가운데 보합세를 유지했으며, 아시아 증시는 중국을 빼고는 주요국에서 올랐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 “이번 도발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이상징후 발생시 비상대응계획에 따라 신속·단호히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