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최근 국방장관이 성추행 스캔들로 사임한 데 이어 국제개발장관 역시 외교의례를 무시하며 이스라엘 관료들과 비공개 만남을 가진 사실이 밝혀지며 자리를 내놓게 됐다고 영국 BBC 방송이 8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이같은 내부의 혼란은 안그래도 지지부진한 브렉시트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주요 관료들 줄줄이 낙마···메이 총리 입지 더욱 좁아질 듯
영국의 개발도상국 지원 분야를 맡고 있는 파텔 장관은 이스라엘 방문 뒤 영국 원조 예산 중 일부를 이스라엘군에 지원하자는 제안을 했으며, 이스라엘이 시리아 골란고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인도적 활동에 대한 영국의 지원 여부를 타진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영국의 정책 변화는 없었지만, 파텔 장관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지 않고 독자적인 만남을 가진 것에 대해 국내적으로 큰 비난이 일었다.
지난 주말 이스라엘 비밀회동이 보도되며 파텔 장관은 6일 사과입장을 발표했으나, 지난 9월에도 이스라엘 고위 관료들을 만난 것이 드러나면서 결국 사임에 이르게 됐다고 외신은 전했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파텔 장관의 비공개 회동 사실이 알려진 뒤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그를 소환했다.
파텔의 사임으로 총선 패배 뒤 입지가 좁아진 메이 총리의 정치력은 더욱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마이클 팰론 국방부 장관은 성추행 의혹으로 사임했으며, 메이 총리의 측근 데미안 그린 수석장관 역시 성희롱과 관련된 의혹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다. 성추문 의혹을 받던 웨일스 자치정부의 칼 사전트 지역사회·아동부 장관 자살 등 계속되는 정치적 우환이 영국 정부의 위기를 키우고 있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영국 국내정치 혼란, 브렉시트 협상에도 악영향
한편 유럽연합(EU)과 영국은 9일부터 이틀간 브뤼셀에서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6차 협상을 진행한다. 양측이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협상도 5차례에 걸친 지난 협상들과 비슷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 뒤 영국에 잔류하는 EU 회원국 국민 권리와 EU 지역에 잔류하는 영국 국민 권리, EU 회원국 시절 영국이 약속했던 재정기여금,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간 국경문제 등이 3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메이 총리는 EU 지역에 잔류하는 영국 국민과 영국에 잔류하는 EU 회원국 국민의 권리 부문에서 양측이 합의에 근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EU에서는 구체적으로 이뤄진 합의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며, 협상은 여전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영국은 EU와의 미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막연히 '긴밀하고 특별한 파트너십'만을 강조하고 있다. EU는 영국의 탈퇴 조건이 합의된 뒤 무역 등 미래 관계를 논의하자는 초반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성추문 의혹이 영국 정치권을 강타해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성추문 의혹은 안그래도 불안정한 메이 정권을 위협하고 있으며, 브렉시트 완료 전까지 메이 총리가 정권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런던 타임스는 EU 지도자들이 메이 퇴진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CNN은 "메이 총리는 최근 이어진 각종 사건으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면서도 "브렉시트 협상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메이 총리의 후임자로 떠오르는 인물이 없어 당분간 총리직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