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연계가 위기를 맞았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무대 콘텐츠) ‘난타’가 오는 12월 충정로 전용 극장을 폐관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한국 공연계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대학로의 공연들마저 하나 둘 자취를 감추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전한 중국 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조치에 따른 중국인 관람객 급감이란 외부적 요인이 컸다는 분석과 함께 내부적으로 문화예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총 57개국 310개 도시에서 공연된 난타는 서울 명동과 홍익대 앞, 제주를 비롯해 태국 방콕 등 5개 전용극장에서 상설 공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내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확산 제한 정책) 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난타는 직격탄을 맞았다.
송승환 회장은 “가장 어려운 때 20주년을 맞고 성장통을 겪는 중이다. 미국 하와이, 태국 파타야 등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난타’ 전용관 폐관 문제는 단순히 ‘난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인 관광객 급감과는 별개로 대학로를 찾는 한국인 관람객도 꾸준하게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면서 문화예술인들이 대학로를 떠나게 만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6 공연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연 건수는 3만7935건(-16.3%), 공연 일수는 8만3415일(-13.5%), 공연 횟수는 10만3003회(-14.1%), 관객 수는 3046만8719명(-17.4%)으로 전년보다 모두 감소했다.
6년 동안 극단을 운영하다가 현재는 대학로 생활을 정리하고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임모씨(38)는 “많은 연극인들이 예술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이쪽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밤에 작품 연습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술인들이 참 살기 어려운 곳이 한국 사회다”라고 꼬집었다.
‘발레는 발레무용수에게 단순한 직업을 넘어 정체성의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한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의 말처럼 예술은 예술인들에게 삶 전체가 되기도 한다. 임씨처럼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8월에는 ‘대학로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던 공연기획사 아시아브릿지콘텐츠 고(故) 최진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수로 프로젝트’를 비롯해 대학로 상업 뮤지컬과 연극 등을 다수 제작했던 그였기에 ‘미안하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전해진 그의 죽음은 공연계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연 외에 교육, 해외사업 등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90억원의 부채를 떠안았던 최 대표는 당시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채권자들에게 포괄 금지명령(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하는 등 강제집행을 금지하도록 하는 결정)을 통지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고질적인 문제들이 고쳐지지 않자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문화특구를 지정해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자금과 세제 혜택 등의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베이징의 798과 스페인의 빌바오 등이 그러한 사례다.
실제로 서울시는 대학로 근처에 국내 최초로 연극인을 위한 복합시설을 짓겠다는 복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 시설은 전문 연극인과 지역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복합문화시설이자 열린 커뮤니티 공간으로, 소극장과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블랙박스형 극장 등 공연 공간을 비롯해 연습실·리딩룸 등이 들어선다. 북카페, 전시공간, 세미나실, 임대사무실 등도 마련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문화예술인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실질적인 문화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결국 문화정책 시행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지난 몇 년간 ‘블랙리스트’로 얼룩졌던 문화예술계에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적용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서 정작 문화예술인들이 소외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바로잡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로 문화예술계에 대한 차별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화예술정책은 지원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예술가들이 정책결정에 구체적으로 참여해 스스로 논의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결정한 정책을 전달하는 체계를 수정,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블랙리스트의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