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2년 만에 부활한 집단기업국을 필두로 재벌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물론 이해당사자인 기업들 역시 맞불작전으로 대응할 기세다.
재벌개혁에 앞서 내부 기강을 바로세우는 등 ‘배수의 진’을 친 공정위지만, 기업의 소송전과 함께 국감기간 중 야당 의원들의 흔들기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개혁 드라이브가 초반부터 냉혹한 검증대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45개 대기업집단 계열사의 일감몰아주기 등 전수조사 분석을 토대로 혐의가 포착된 기업부터 전수조사에 들어갈 전망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재벌 그룹에 대해 "오는 12월까지 긍정적 변화의 모습이나 개혁 의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구조적인 처방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점검에 대해 "실태조사 결과, 법 위반 혐의가 있는 잠재적 조사 대상 그룹이 두 자릿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현실적으로 다 조사할 수는 없는 만큼, 가급적 한 자릿수 이내로 압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의 재벌개혁 드라이브 강도가 세지는 만큼, 대기업의 반발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업집단국의 출범 자체에 대해 비난이 일기도 했다. 경제계에서는 △선진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직이라는 점 △기업 집단의 시장지배력 남용과 관련, 불공정문제는 다른 부처에서도 다룬다는 점 등을 도마 위에 올렸다. 또 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기준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여기에 퀄컴에 내려진 1조원대 과징금과 시정명령 취소 소송이 시선을 모을 전망이다. 퀄컴이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인데, 공정위 시정명령의 적법성 여부가 본안 소송의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진그룹을 상대로 한 일감 몰아주기 소송에서 패한 공정위가 대법원에 지난달 상고하며 이 역시 법정 공방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러다 보니 공정위의 행정명령 등에 대한 기업의 반발 기류가 확산될 조짐이다.
오는 19일 열리는 공정위 국감을 앞두고 정치권도 잔뜩 벼르는 분위기다. 공정위 퇴직자 다수가 대기업 및 대형로펌에 재취업하는 상황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이 이어질 전망이다.
공정위가 프랜차이즈 정보공개서를 늑장 공개, 가맹점주들이 충분한 준비 없이 창업시장에 뛰어든다는 지적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재벌개혁을) 몰아치듯이 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은 제도적인 정비를 병행한 체계적인 개혁을 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위반기업에 대한 엄벌은 불가피한 만큼, 대기업의 ‘살아남기 전략’이 자칫 재벌개혁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개혁 일선에 나선 공정위가 정권 초반 경제개혁의 물꼬를 틀지 냉혹한 검증대 앞에서 고개를 숙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한 경제계 인사는 “지금까지는 시장 주체가 자발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유예기간이었고, 재벌개혁의 강도는 점점 세질 것”이라며 “다만 공정위도 기업활성화와 규제에 대해 상호보완이 될 수 있도록 법 집행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