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일본은 '붓'이라는 동일한 기록매체를 사용하며 넓은 의미의 한자문화권으로 이웃해 왔다. 한글, 가나, 한자의 각 서체가 저마다의 미적 감각을 자랑하면서도 함께 발전해 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을 서체사(史)로 조명하는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재원)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571주년 한글날을 기념해 일본의 국립역사민속박물관(관장 쿠루시마 히로시)과 공동으로 '한중일 서체 특별전'을 개최한다.
중국은 한자의 기원이 되는 기원전 14세기 갑골문과 문자가 새겨진 청동기, 그리고 국내 서예에 영향을 미친 안진경, 왕희지 등의 법첩 등을 선보인다. 현재 알려진 국내 갑골문은 중국 갑골문의 대가인 동작빈에 의해 소개된 서울대 박물관 갑골문과 숙명여대 박물관이 소장하는 갑골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편들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숙명여대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편이 전시되며 중국 은허박물관 소장 갑골문 중 완전하게 남아 있는 편을 중국문자박물관 탕지건 관장의 협조를 통해 현지에서 복제한 복제품으로 소개한다.
일본의 가나서체 자료 중에선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귀중본인 '다카마쓰노미야가 전래 긴리(황실)본' 가운데 '다카마쓰노미야가본'의 노래 겨루기 내용이 담긴 '간표노온토키키사이노미야 우타아와세'(寬平御時后宮歌合) 사본이 먼저 눈에 띈다. 이 밖에 이야기책인 '이세 이야기'(伊勢物語) 고사본과 막부 말기부터 쇼와 초기까지 교토의 상인으로 활동했던 다나카 간베노리타다가 고증 연구를 위해 수집한 '다나카 조 씨 구소장 전적 고문서'자료 가운데 '만요슈'(万葉集) 등의 자료도 만날 수 있다.
한국 자료로는 '훈민정음언해본', '월인석보' 등 초기 훈민정음체를 볼 수 있는 판본들과 조선중기 이후 화려한 꽃을 피운 왕실의 궁체자료들이 전시된다. 아울러 필사본 고소설 등에서 아이들이 제멋대로 쓴 것 같은 개성 넘치는 민체 모습도 접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전시품 서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시품, 작가, 서체 등에 관한 모든 설명을 정보영상 모니터에 담았으며, 한중일 서체의 변화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개념 영상 상영, 별관 나눔마당의 서체 체험 등 다각적인 전시기법이 도입됐다.
김재원 관장은 "한글은 문자 자질이 갖는 우수성뿐 아니라 창제 이후로 끊임없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해 온 문자"라며 "이번 전시처럼 한글 서체사의 흐름을 정리하는 사업 등을 통해 향후 한글 서체의 발전과 활용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하는 작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