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 冬夏閑談, 박연호칼럼] 라틴어 열풍

2017-09-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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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한담 冬夏閑談

박연호 전통문화연구회원
라틴어 열풍

서울 강남, 서초의 입시학원 10여 곳에 라틴어반이 개설돼 비싼 수강료에도 불구하고 신청자가 몰렸다고 한다. 미국 대학에 입학하려는 고교생이 주 대상인데, 수강생 중에는 초·중학생까지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라틴어가 어려워 배우는 사람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를 우려한 하버드 등 명문 대학들이 라틴어를 잘하면 SAT(미국 수능시험)에 유리하다고 공식발표, 미국 고교에 라틴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 열풍이 한국에도 상륙한 것이다.

40~50년 전 고교와 학원가에서 일본 명문대학, 그것도 도쿄대학 입시문제를 구해다가 가르치던 유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는 국내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일본대학 문제를 다뤘는데, 지금은 미국대학을 직접 겨냥한 점이 다를 뿐이다.

외국어 사용능력은 개인이나 국가의 자산이자 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영어 등 몇 가지에만 치우쳐 있어, 예컨대 스페인어·아랍어권 같은 중요한 지역에서 일할 인력이 충분치 않은 실정이다. 세계 각지 언어는 물론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 나아가 고대 문명권의 언어까지 구사하고 연구하는 인력이 풍성한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빈곤하다.

따라서 라틴어 열풍을 불편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국인이 목을 매다시피 한 영어는 어휘의 60% 이상이 라틴어와 희랍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연히 이런 언어 습득은 영어 공부에 유리하다.

우리말도 70% 이상이 한자어에 근거한다. 약 20년 전 주한 미대사관에서 근무한 제임스 휘틀록씨는 우리말을 배우다가 한자의 비중과 역할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한글학습 노트와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인 눈높이의 한자사전 ‘Chinise Characters : A “Radical” Approach’(일조각 출판)를 펴내 한국어를 배우는 국내외 외국인들의 호응을 받았다. 라틴어 열풍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인이 펴낸 옥편’이라며 신기해하던 한국인에게는 영어 학습교재로도 안성맞춤이었다.

영어는 라틴어, 희랍어는 물론 불어, 독어 등 현행 각 언어에서 차용해 쓰는 외래어가 매우 많다. 그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면서도 효과적으로 잘 수용해 영어를 더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외국어 구사와 외래어 사용을 구분하지 못해 우리말을 풍부하게 만들기는커녕 국어 파괴를 일삼고 있다.

개천과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듯이, 영어나 한자의 유입을 차단할 수는 없다. 대신 효과적이며 능률적인 외래어 수용 및 강력한 국어 보호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수많은 강물이 흘러 들어가도 바다는 늘 바다이듯이 국어의 본성을 해치지 않고 더 풍부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라틴어 열풍도 그런 차원에서 대응하면 오히려 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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