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공기업 사장을 사나흘쯤 건너서 만났다. 둘 다 행시 출신으로 금융위원회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은행에나 무섭지 고개만 숙이는 자리. 금융서비스국장을 지낸 사장은 이렇게 기억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나갔으니까 금융서비스국장을 맡았겠지. 증권사를 챙기던 전 자본시장국장에게는 공감하기가 쉬웠다. 마찬가지로 잠시 쉬어 가는 자리라고 깎아내리기는 했다. 그렇지만 알아듣기 쉽게 이유를 댔다. 자본시장국장 치고 1년 넘게 일하는 사람이 드물다나. 금융서비스국장은 안 그렇단다.
그래서 금융위에 확인했다. 올해까지 딱 10년 동안 금융서비스국장, 자본시장국장을 맡은 사람이 제각각 몇 명인지. 답은 똑같이 8명씩 모두 16명이다. 물론 사람마다 근속연수는 달랐다. 그래도 1인 평균 근속연수에서는 15개월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금융시장국장이 오래 버티거나 자본시장국장이라고 금세 물러나지 않았다. 전 자본시장국장이 한 얘기를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거다.
일부러 과장하지는 않았겠지. 근속연수를 다시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범위는 박근혜 정부로 좁혔다. 금융서비스국장은 모두 3명에 평균 15개월 일했다. 자본시장국장은 이보다 한 명 많았다. 당연히 근속연수도 평균 10개월밖에 안 됐다. 가장 짧게는 8개월 만에 떠나기도 했다. 서태종 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최단기 자본시장국장이다. 일부는 쉬어 가는 자리처럼 느낄 법했다.
금융서비스국장이 고개만 숙이는 이유도 찾자면 많다. 기획재정부처럼 덩치 큰 부처는 힘도 세다. 국회와 주거니(예산) 받거니(법안)가 가능하다. 반대로 금융위는 모든 부처 가운데 한참 뒷전이다. 국회에도 줄 게 없다. 밀고 당기기가 안 된다. 금융을 번듯한 산업으로 보는 시각도 적다. 구조조정이나 가계부채를 빼면 기억에 남는 금융 뉴스가 없다. 심지어 금융위를 동네북으로 여기기도 한다. 금융위가 공정거래위원회보다 나쁜 짓을 많이 했다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얼마 전 기자단 앞에서 던진 얘기다. 문재인 내각 안에서 첫 팀킬로 기억될지 모른다. 물론 뒤늦게 실언이라고 했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린 후에.
애정이 있으니 전 국장 둘도 불만을 얘기했을 거다. 김상조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실언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표현에 문제가 있었지만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기는 똑같을 거다. 요즘 금융권에서 최대 관심사는 새 금융위 수장이다.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이 금융위원장 후보로 정해졌다. 금융위를 크게 흔들어 놓을 사람은 아니다, 이런 평이 많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 사례가 적지 않다. 최종구 후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조직원이 고개 숙이거나 쉬기만 한다면 새 장관도 별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