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변방별곡2] ‘체천행도?’

2017-06-18 20:00
  • 글자크기 설정
 

[사진=서명수]



수호전은 삼국지와 더불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많이 읽은 중국의 고전일 것이다. 그 수호전에 나오는 송강을 비롯한 영웅호걸(사실은 난세의 도적떼) 들이 산채인 ‘양산박’에 내건 기치가 ‘체천행도’(替天行道)였다. 하늘을 바꿔서 도를 행한다는 것이다.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수호전의 무대인 송(宋)왕조를 바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명분을 갖춘 거창한 구호였다. 이 ‘체천행도’ 덕분에 양산박은 정의로운 도적떼가 됐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빈번하게 터지고 있는 사회불만 범죄의 당사자들이 양산박 영웅호걸 흉내를 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빛의 속도로’ G2 경제대국으로 고속성장한 중국이 성장엔진을 멈추고 세계 최고의 빈부격차를 자랑하는 한편, 사치가 극에 달했던 송(宋)나라와 같은 부패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15일 중국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시의 한 유치원 앞에서 가스폭발로 추정되는 폭발사고가 발생, 6명이 숨지고 60여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발 빠르게 수사에 착수, ‘신병을 비관한 한 정신이상자의 소행’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용의자는 22세의 대학휴학생 쉬(許)모씨로 스스로 만든 폭발장치를 터뜨려 현장에서 사망했다.
앞서 지난 달 9일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서 발생한 한국국제학교 부설 유치원 차량의 화재 참사 역시 교통사고에 의한 2차 사고가 아니었다. 해고통보에 불만을 품은 중국인 운전기사의 계획적인 방화로 빚어진 참사였고 희생자 대부분이 한국국적의 유치원생이었다는 당국의 발표도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중국의 어린이 대상 ‘묻지마 범죄’의 대상이 한국국제학교로까지 확대되면서 중국사회 내에 잠재된 사회 불만과 이에 따른 불안정성이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 상황이 아니게 된 것이다.

어린이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식 사회불만 범죄는 10여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중국내에서 증가하고 있다. 중국 공안당국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치안대책을 강화하거나 정신이상자의 개인범죄라는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논란을 차단하곤 했다. 이번 장쑤성과 산둥성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상하이엑스포가 열린 2010년 중국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인 범죄가 중국 전역에서 부메랑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전 중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바 있다.
같은 해 5월 12일 산시(陝西)성 한중(漢中)시의 한 사립유치원에 괴한이 흉기를 들고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유치원생 7명과 교사 2명 등 9명이 희생됐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비슷한 참사가 중국 전역에서 연쇄 다발적으로 빚어지면서 21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까지 나서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대규모 무장경찰을 배치, 등하교길 지도에 나서는 등 치안이 강화됐지만 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중국공안당국은 사회불만에서 기인한 ‘증오범죄’라는 분석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보도통제에 나선다. 이번에도 당국은 장쑤성 유치원 폭발사고 당시의 영상이 SNS와 인터넷에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 유언비어 유포 금지를 경고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묻지마 범죄가 사실은 개인적인 일탈행위라기보다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사회의 온갖 문제점이 종합적으로 결합, 표출된 사회불만 범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베이징의 최대 번화가로 잘 알려진 왕푸징(王府井) 보행가. 2005년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9월 11일. 택시를 타고 도착한 승객이 이 택시를 탈취, 왕푸징을 질주하는 바람에 2명이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 전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현장에서 공안에 체포된 범인은 32세의 농민공이었다.
재판과정에서 그는 ‘替天行道’(체천행도)을 주장했다. “(중국사회의) 사회도덕이 완전히 상실됐기 때문에 하늘을 대신해서 도를 행하려고 한 것일 뿐이며 (나의 행위는)사회적 정의를 실천하고 엄중한 경고를 던지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의 이면이라고 할 수 있는 빈부격차 악화에 따른 중국사회의 갈등해법은 ‘원바오’(溫飽) 시대를 넘어 ‘샤오캉’(小康)시대를 지향하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신중국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과제다. ‘양산박’은 중국 전역에 도사리고 있다.

슈처차이나연구소 대표. 작가
.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