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탕카, 중국 티베트문화의 보물

2017-05-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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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화보 장진원(張勁文) 기자 =‘탕카(Thang-ga)’는 티베트어를 음역한 것으로 티베트문화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족자 형식의 채색화다. 천, 가죽, 종이에 순금, 은, 천연광물 등을 안료로 사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비단에 수를 놓아 만든다. 전통적인 티베트 탕카는 종교, 정치, 역사, 문화, 천문역산, 전통의약 등 소재가 다양해 ‘티베트족 고전문명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린다.
서기 7세기부터 명확한 문자 기록이 있었던 탕카는 1300여 년 동안 웨이짱(衛藏)지역에서 유행한 ‘몐탕(勉唐)화파’, 허우짱(後藏)과 난산(山南)지역에서 유행한 ‘친쩌(欽則)화파’, 창두(昌都)를 중심으로 캉(康)지역에서 유행한 ‘가마가쯔(噶瑪嘎孜)화파(가쯔(噶孜)파)’의 3대 화파를 형성했다.
형식과 기능으로 봤을 때 탕카는 조상의 유목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불교를 숭상한 설역(雪域)의 조상들은 유목생활을 하면서 ‘옴마니반메훔’ 6자 진언을 암송하는 것 외에 언제 어디서나 신(身), 어(語), 의(意)를 공양할 수 있는 성물로 부처를 칭송하고 참배해야 했다. 이럴때 탕카는 가장 이상적인 종교예술 형식이었다. 탕카는 소장과 휴대가 간편할 뿐 아니라 의미가 광활하고 무한해 삼계(三界) 제불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티베트족 전통혼례에서도 신부를 맞으러 가는 행렬 앞에 탕카를 걸어 상서로움을 기원한다. 망과절(望果節) 풍작을 기원하며 밭머리를 돌 때도 탕카로 신의 보호에 감사한다. 야외에서 티베트 전통극을 공연할 때면 탕통걀포(湯東傑布, AD 1385~1646)의 탕카를 공연장에 내걸어 숭배의 마음을 표한다. 많은 지역에서 산신에 제사를 지내고 풍수를 보고 집을 지을 때도 탕카를 걸고 기도한다. 이런 민간의 관습을 통해 탕카라는 종교 예술이 티베트족 조상들의 유목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짱(西藏, 티베트)자치구미술가협회 볜바(邊巴)비서장은 “탕카는 티베트불교의 종교사상과 철학이론을 형상화, 구체화시킨 예술이다. 티베트민족의 생활과 감정을 이상세계로 환원시킨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흐르고 티베트불교가 성행하면서 탕카도 더불어 발전했고 수준도 높아져 티베트민족 특색이 진하게 담겨있는 탕카 예술이 형성됐다.
신앙과 예술을 겸비한 화가들
티베트 예술에서는 회화나 조각에 일반적으로 작가가 서명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제작 과정은 일종의 수행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탕카 화가는 자신의 흥미와 재능 외에 진실한 종교적 신앙이 있어야 했고 정통적이고 엄격한 종교 훈련을 받아야 했다. 회화의 전문 기술 외에 경서를 외우고 각종 경전의 교의, 의궤, 도상(圖像), 도량을 잘 알아야 했다. 때문에 탕카 화가는 보통 ‘화승(畫僧)’으로 전문적인 화가와 종교 수행자의 이중 신분을 가졌다.
신자들은 위대한 화가가 그린 탕카는 가지(加持)력이 강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탕카 화가는 그림 주제의 구도, 형상, 비례, 색깔 등을 마음대로 창조할 수 없고 도상과 도량의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해 그려야 했다. 이것은 탕카 예술의 한계다. 탕카 화가들에게는 대대로 전해지는 견본이 있고 이것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이 견본은 종종 밀봉된 경전 속에 숨겨져 있고, 최소 8세트의 조상(造像) 사이즈가 기록돼 있어 장엄한 자태의 조용한 부처든, 표정이 사나운 화난 표정의 부처든, 모든 조상은 상응하는 비례가 있고 수정해선 안 된다.
탕카 화가는 보통 10세 정도에 불교 지식과 탕카 회화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이후 10여 년 동안 탕카 회화 기술과 지식 체계를 공부해야 심(心), 수(手), 안(眼)이 하나가 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탕카는 공필화와 비슷하기 때문에 화가의 나이도 중요하다. 화가의 전성기는 보통 35-45세로 35세 전에는 그림의 기술이 아직 성숙하지 않고 불경에 대한 이해에도 한계가 있다. 45세 이후에는 시력이 저하돼 훌륭한 작품이 줄어든다. 따라서 탕카 작품에는 화가의 경건한 신앙과 예술에 대한 추구가 응집돼 있다. 이런 ‘옛 것을 고수하고 평생을 헌신하는’ 정신은 화가들을 티베트민족 문화를 기억하는 충실한 계승자로 만들었다.

정교하고 복잡한 화법
탕카의 가치 중 상당 부분은 화법에 있다. 인물의 비율, 선 등 모든 것이 탕카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불상의 얼굴과 신체 비율이다. 탕카에서 불상의 신체 비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황금비율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부처 보살의 오관 비율, 체형 도량의 정확성이 매우 중요해 얼굴과 눈이 엄숙하고 뛰어난지와 인물 도량을 엄격하게 따랐는지 등을 따진다. 또한 탕카의 선이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뻗었느냐도 본다. 선은 가늘어야 하고 굵기가 균일해야 한다. 이것도 화가의 공력을 시험하는 부분이다. 금선은 탕카의 마지막 공정으로 금선이 탕카의 정밀도를 결정한다. 금선은 도안이 복잡할수록 기술이 필요하다. 도안은 작고 복잡해 돋보기로 봐야하는 부분도 있다. 이는 탕카 화가의 시력에 큰 부담을 준다. 또한 구선(勾線)과 과도(過渡) 같은 세부적인 부분도 탕카 유파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본다. 완성된 탕카는 딱 봤을 때 기운이 느껴져야 한다. 선한 표정은 자비롭고 친근해야 하고 기쁜 마음이 들어야 한다. 화난 표정은 흉악하고 무서워야 하고 사나운 기운이 있어야 한다. 정말 잘 그린 탕카는 관객이 어느 각도에서 보든 부처의 눈이 자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한다.
화법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가치 판단을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용이 자세한가의 여부다. 탕카는 불교 내용을 가장 많이 다루고, 그 중심은 바로 불상이다. 탕카의 주존은 모두 같은 석가모니불이지만 어떤 작품은 주존 하나에 화초 등으로 배경을 장식한다. 이런 것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그리는 시간도 짧다. 어떤 작품은 주존 외에 주존 주위에 여러 불(佛), 보살, 승려 등 인물을 배치하거나 복잡한 법기(法器)와 장식 등을 덧붙인다. 이렇게 내용이 얼마나 복잡한 지가 탕카의 가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석가모니[사진=인민화보사]

금강수보살[사진=인민화보사]


천년 불변의 색채
탕카는 천년을 보존해도 색이 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탕카에 사용되는 안료 덕분이며 화가의 공력 외에 탕카가 가지는 가치이기도 하다. 탕카는 안료 사용에 매우 신중해 금, 은, 진주, 마노, 산호, 송이석(松耳石), 공작석, 주사(朱砂) 등 진귀한 천연 광물 안료와 사프란, 대황, 청람 등 천연 식물 안료를 사용한다. 이 안료들은 색이 곱고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다. 석가모니와 구루 활불에 대한 화가의 숭배가 다양한 재료 사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진주를 곱게 갈아 흰색을 내고, 붉은 산호를 곱게 갈아 붉은색을 내며, 터키석을 곱게 갈아 녹색을 내고, 금박을 붙여 금색을 내어 탕카의 색채를 진하고 풍성하게 한다. 또한 이런 천연 광물질 안료 때문에 탕카는 천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게 됐다. 이 또한 탕카가 매우 귀중하게 된 중요한 요소다. 게다가 이렇게 자연에서만 취한 독특한 화법이 탕카에 순수하고 진한 티베트문화 유전자를 부여했고, 종교의 신비감과 신성함, 장중함을 더했다.
“시짱 탕카는 홍(紅), 황(黃), 남(藍), 녹(綠), 백(白)을 주색으로 하고 앞의 네 가지 색은 부계, 백색은 모계다. 다양한 배열 조합으로 9대지(大支) 색을 만들고, 5색과 9색을 조합해 32중지(中支)를 만들며, 5색과 32색을 재배합해 최종적으로 158소지(小支)를 만든다. 이렇게 하면 탕카에 필요한 색이 모두 만들어진다.” 중국미술가협회 회원이자 시짱자치구 미술가협회 이사인 쯔둥와 핑춰둬부제(孜東哇 平措多布傑)는 “탕카 작품의 색채는 ‘세상에 나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안정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처에 대한 경의가 자연스럽게 샘솟게 한다”고 말했다.
탕카에 색을 입히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한 번에 한 가지 색만 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탕색을 칠한다면 하늘의 천계를 먼저 하고 그 다음 땅의 속세를 칠한다. 색채는 남색과 녹색 등 차가운 색채를 먼저 칠하고 그 다음 붉은색, 주황색, 밝은 황색 등 따뜻한 색채를 칠하며 이후에 흰색을 칠하고 마지막에 부처의 몸 색깔을 칠한다.
“탕카 작품의 모든 색은 화가가 안료를 직접 배합해 만든다. 그래서 모든 탕카 작품은 세상에서 단 하나다.” 볜바 시짱미술가협회 비서장은 이렇게 말했다.
 

석가모니 측상[인민화보사]


해외로 진출하는 탕카 예술
전통적인 티베트 사회에서는 거래할 때 등가 거래가 아닌 경건함과 정성스러운 마음을 본다. 핑춰둬부제 이사는 그의 고향에서 탕카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고 말했다. 해방 전에는 참파 한 자루, 버터 기름 한 병, 하다 한 개로도 탕카를 얻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야크 20마리로도 화가의 탕카 한 점을 얻지 못하기도 했다. 핵심은 불교와 인연이 있느냐 여부다. “자기가 직접 만든 참파를 가져와 내가 정성을 다해 그린 탕카를 얻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 주겠는가? 내 눈에는 불공을 드리는 그의 공손함과 정성이 나와 같아 보여서 그와 교환한 것이다.”
탕카가 세계로 진출하면서 시장은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했다. 어떤 작품은 국제 경매장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에 낙찰되기도 했다. 1994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명나라 영락제 때 제작된 대형 <자수홍야마탕카(刺繡紅夜魔唐卡)>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이 탕카는 100만 달러라는 고가에 낙찰됐다. 2002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에 이 탕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3087만4100홍콩 달러에 낙찰돼 가격이 8년 만에 30배 이상 상승했다.
이후 소장가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2006년 중국의 1차 무형문화재 목록에 탕카가 편입됐고, 2009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자 소장 붐이 또 한번 일었다. 통계에 따르면 탕카의 시장 가격은 2000년 대비 12배 올랐다. 탕카 자체가 지닌 예술적 가치 외에 탕카 예술가들의 수가 적고 작품 공급이 부족한데다 어떤 의미에서 불교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어 탕카는 가격 상승 공간이 매우 크다. 업계인사들은 탕카는 내용이 풍부하고 희소성이 있으며 기법이 다양하고 용도가 많기 때문에 소장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밝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핑춰둬부제 이사는 “최고 수준의 탕카가 계속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화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을 소장가들이 높은 가격에 사들여 소장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일정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보다 많은 제자를 양성해 탕카 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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