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계란후라이

2017-02-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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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뤘다. 그 후폭풍으로 인해 달걀 값이 평소의 3배 수준으로 오르는 상황이 발생하자 미국산 달걀을 수입해서 장바구니 부담을 덜고자 하는 고육지책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계란 한 알’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최근까지 계란은 정말 값싸고 흔한 식재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일부 음식점에서 계란후라이나 계란말이를 서비스로 제공해도 별다른 감흥없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식당 이모님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사리 리필을 부탁해야 하는 특별한 음식이 됐다.

오늘 아침 밥상에 오른 계란후라이가 문득 나를 어린 시절의 상념 속으로 잡아 이끈다. 내 고향은 오영수의 '요람기' 첫머리에 등장하는 기차도 전기도 없는 산간벽촌은 아니었지만 나름 외진 충청도의 시골마을이었다. 유년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도 사람 사는 정이 넘치던 지방의 소도시였다.

풍족함보다는 부족함에 익숙한 시절에 나고 자란 나에게 계란후라이는 어머니의 사랑 그 자체였다. 그 시절 어머니는 도시락을 싸주실 때면 꾹꾹 눌러 담은 밥 위에 언제나 잘 부쳐진 계란후라이를 얹어 주셨다.

당시의 어려운 살림살이에 계란후라이를 매일 먹는다는 것은 상당한 사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힘내서 공부 열심히 하기를!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본인의 한없는 사랑을 오롯이 계란후라이에 담아 베풀어주셨다. 자식에 대한 끝 모를 사랑, 그 시절을 살아가셨던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지금은 물질적으로 너무나 풍족하다.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그다지 없기에 요즘 세대들은 계란후라이에 담긴 애틋함을 느껴볼 기회가 별로 없다. 옛날 계란후라이가 있던 자리를 지금은 치킨이나 피자와 같은 기름지고 양 많은 음식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세대들은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하다.

경제발전을 통해 우리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얻었지만 대신 소중한 정신적 가치를 많이 잃어버렸다. 특히 우리 사회를 지탱했던 핵심가치 중 하나였던 따뜻한 정이 약해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 상당수 사람들은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혼밥, 혼술 등으로 대표되는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이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어 주고 있던 인연의 실줄들을 하나 둘 약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족 역시 변화의 위기에 직면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인연의 실줄 중에 가장 굵고 튼튼한 것은 가족과의 인연이다. 그러나 절대 끊어질 것 같지 않은 가족과의 인연도 사랑과 정성으로 때때로 감싸주지 않는다면 어느 날 툭하고 끊어져 버릴 수 있다. 가족애가 필요한 이유다. 가족끼리 서로를 보듬어주고 아껴주는 노력이 지속될 때 가족의 가치도 견고하게 지켜나갈 수 있다.

펄 벅(Pearl S. Buck)은 "가족은 나의 대지! 나는 거기서 나의 정신적 영향을 섭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족은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이며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정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 구성원 간에 가족적 유대감을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훈훈하고 따뜻한 사회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어머니가 싸주신 계란후라이가 담긴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가던 소년은 이제 반백의 나이를 훌쩍 넘어섰다. 그리고 매일 아침 자식을 위해 계란후라이를 부쳐 내시던 어머니는 얼마 전에 작고하시고 더 이상 계시지 않는다. 가만히 어머니의 살아생전 모습을 떠올려 보노라면 열심히 살아온 삶이건만 왠지 모를 죄송함에 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왜일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시절 계란후라이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이 더욱 진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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