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사업장이 있어서 현장에 파견하려고 국내 대학 베트남학과 학생 5명을 면접했다. 그 중에 한 친구는 능력도 있어 보여서 인사 담당자에게 채용해서 보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인사 담당자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베트남 현지 직원들 가운데 한국어를 잘 하는 친구들이 아주 많은데 왜?’였다.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을 들은 기자는 큰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 멍해졌다. 해당 대학은 국내 대학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베트남학과를 개설, 국내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런 학생들이 한국어를 잘하는 베트남 현지인에게 의문의 패배를 당했다. 그것도 한국기업에서.
현지인에 후한 점수를 준 인사 담당자의 말 속에는 ‘국내 대학교를 졸업한 한국인이 베트남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성 향상은, 예를 들어 과거 한국인 1명이 하던 일을 베트남인 10명이 하다가, 지금은 3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생산성은 인건비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과거에도 베트남인 10명의 인건비가 한국인 1명보다 적었고, 현재의 베트남인 3명의 인건비도 여전히 한국인 1명보다 적다. 그런데,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어 베트남인 1명과 한국인 1명과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베트남인 직원이 한국어까지 잘 한다. 전문가들은 한류의 힘이 컸다고 한다. 우리가 어렸을 적 팝송과 외화를 보면서 영어를 공부했듯이, 그들은 K-POP 스타의 노래와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문화까지 익혔다.
베트남인들의 한국에 대한 사랑도 한 몫을 했다. 실제로 베트남 국민들은 한국이 미국과 함께 월남전에 참전한 국가지만, 역사에 대해 사죄한 한국을 용서하고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의 사죄 후 베트남 정부는 수도 호치민시에 소재한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던 한국군과 관련된 부정적인 내용의 기록물을 철수했을 정도다.
인사 담당자의 말에 숨어있는 의도는, 한국인 직원을 채용해 보니 기대만큼 효과를 얻지 못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한국에서 해외로 직원을 파견하려면 국내 근무에 비해 3~4배의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보내는 직원의 능력이 그 나라 언어만 잘하고 업무 수행력이 떨어지고, 현지인 직원들과의 융합에 실패해 외톨이가 되는 등 적응에 실패해 돌아오는 직원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그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현지인을 뽑는 것으로 리스크를 최소화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기업들의 사정도 어떤지 물어보니 서서히 비슷한 추세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다른 개발도상국에 진출한 기업들도 한국어를 잘하는 현지 직원들을 선호하고 있다. 이제 우리 취업준비생들은 면접시험장에서 함께 면접을 보는 눈에 보이는 이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취업준비생들과도 ‘보이지 않는’ 경쟁을 펼쳐야 한다. 바늘구멍으로 불리는 취업문은 훨씬 좁고, 앞으로는 더 좁아질 것이 분명하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는 현실이다.
어쩌면 청년실업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을 현실화하며, 근무여건을 개선시키는 등 사용자측만 강요당하는 노력으로는 풀 수 없다. 부모와 스승, 선배들이 전수한 경험, 변화의 흐름을 담보하지 않은 교육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해 온 젊은이들에게 취업 좌절의 잘못을 탓할 수도 없다.
구인과 구직 사이의 인식의 괴리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다. 스펙에만 매달려 가장 중요한 창조성·사회성을 키워내지 못하는 현재의 국가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기업은 원하는 인재에 목마르고, 취업준비생들은 자아를 발굴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은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