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꿈에 대해 생각하고, 진솔하게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를 통해 뭔가 놀라운 일을 할 생각에서 ‘훌륭한 공부’가 시작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한 가지를 더 갖춰야 한다. 바로 ‘용기’다. 이 용어 대해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였던 모건 스콧 펙이다.
그는 저서 <끝나지 않은 여행>에서 ‘나를 끝없이 놀라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용기가 뭔지 아는 사람이 너무나 극소수라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또는 고통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가는 능력이다’라고 표현했다.
우선 몸이 원하는 것과 뇌가 원하는 것을 구분해보자. 우리가 사는 세계는 나와, 나를 둘러싼 외부 세계로 구분된다. 나는 세계를 인식하고 분석하고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나와 외부 세계가 구분된다.
나와 외부 세계의 경계는 피부다. 피부에는 감각기관이 있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낀다. 이렇게 우리는 자극을 통해 외부 세계를 인식한다. 인식된 외부 세계는 신경을 따라 뇌에 전달되는데, 뇌는 학습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현재까지의 기억과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판단한다. 이때 좌측 뇌는 이성적인 논리, 언어, 수리적 판단을 하고 우측 뇌는 아름다움, 감성, 통합적 판단을 한다.
그러나 판단의 재료가 외부 세계에서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판단의 요구가 뇌로 밀려오는데 배고픔, 졸림, 추위나 더위 해결과 같은 것들이다. 이는 생존과 직접 관련된 것도 있지만, 놀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요구도 있다. 이런 종류의 것은 대부분 몸의 요구다.
뇌가 욕구하는 것은 한 차원 높은 것들이다. 닥쳐온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졸음을 참고 공부하자, 춥지만 적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 공부해야 한다 등이 그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몸의 요구를 들어주어 득이 될 것이 별로 없는 데도 몸의 논리를 뇌가 당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험이 이틀 남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뇌는 부족한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이고 더 집중해서 공부하려고 생각하지만, 몸은 한 시간만 더 자고 공부를 시작하자고 뇌를 설득한다. 졸린 상태에서는 공부가 잘 안 될 것이니 한숨 자고 일어나면 공부에 능률이 오를 것이라고 설득한다. 그래서 판단하기 전에 요구의 출처를 항상 확인해야 한다.
몸은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고 뇌는 대개 더 긴 안목으로 미래의 행복을 추구한다. 1943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욕구 5단계 이론’을 통해 생존과 같은 몸의 요구부터 단계적으로 해결돼야 자아실현과 같은 높은 단계의 정신적 요구가 확산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1세기는 다르다. 마지막 단계의 자아실현 요구조차 생존의 문제다. 당장 죽고 살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면 뇌의 요구, 즉 정신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신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중에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