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천일만에 자신을 둘러싼 '7시간 행적' 의혹에 대해 직접적으로 해명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들은 남아 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이 10일 공개한 행적 자료는 그동안 청와대의 ‘오보를 바로 잡습니다’ 내용, 박 대통령의 주장과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의 증언 등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대참사에도 불구하고 당일 오전․오후 관저에서 근무한 것 역시 “청와대 관저는 ‘제2의 본관’이다. 대통령의 일상은 24시간 재택 근무 체제”라고 주장하면서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령과 질병으로 관저에서 집무할 때가 많았다”고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오전 10시 이전 회의나 저녁 회의, 휴일 업무를 대부분 관저에서 봤다”며 ‘당연한’ 이야기를 마치 잘못된 것인 양 왜곡해 ‘물타기’했다.
이날 답변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평소처럼 기상해 아침 식사를 한 뒤 오전 9시경 관저 집무실로 출근했다.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도 이같이 증언한 바 있다.
박 대통령 쪽은 “2014년 4월16일은 대통령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었고 신체 컨디션도 좋지 않았기에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하기로 결정했다”며 “그날 역시 공식 일정이 없을 때의 평소와 다름없이 집무실에서 그간 밀렸던 각종 보고서를 검토했고 이메일, 팩스, 인편으로 전달된 보고를 받거나 전화로 지시를 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처음 인지한 것은 오전 10시께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침몰 현황 '1보' 보고서를 받고서라고 말했다.
이후 10시 15분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해 상황 파악 등을 지시했으며 10시 22분엔 김 실장에게 다시 "샅샅이 뒤져 철저히 구조하라"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전화가 실제로 있었다는 증빙은 제시하지 못했다. 윤 행정관은 김 안보실장과 유선통화를 연결한 적이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헌재는 참사 당일 박 대통령과 당시 김 안보실장 간 통화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사고소식을 접한 이후에도 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관저집무실에 계속 머무르면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특히 오전 8시50분께부터 방송들이 생중계를 하고 있었고, 국민들이 이 중계를 통해 세월호가 침몰되는 상황을 시시각각 지켜보는 참담한 상황이었는데도 첫 서면보고를 받기 이전 이 1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사고 소식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1시간 동안 왜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박 대통령이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추가 의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박 대통령측은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 이 1시간에 대해 아무런 내용을 담지 않았다.
또 당시 김 안보실장이 첫 서면보고 이후 TV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할 것을 박 대통령에게 권유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안보실이 이날 보고한 상황보고 문건 중 오전 11시20분에 보고된 3보(3번째 보고)에는 선수 하단부만 빼고 뒤집혀 선체가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세월호 사진이 '세월호 현재 상태'로 첨부돼 있다. 선체 내에 승객이 남아 있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음에도, 이후 3시간 가량 박 대통령은 '지시' 없이 계속 '보고'만 받은 것으로 돼 있다.
박 대통령은 또 첫 서면보고 이후 오전 내내 국가안보실, 해경청장, 사회안전비서관실로부터 보고를 받았다고 했지만, 정작 대면보고는 이날 점심 이전과 이후 안봉근 당시 제2부속비서관과 정호성 당시 제1부속비서관으로부터 단 두 차례 받았을 뿐이다.
박 대통령 측은 또 “그날 관저 출입은 당일 오전 피청구인의 구강 부분에 필요한 약(가글액)을 가져온 간호장교(신보라 대위)와 외부인사로 중대본 방문 직전 들어왔던 미용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오후 2시 50분께 승객 대부분이 구조됐다는 앞선 보고가 잘못됐다는 말을 듣고 오후 3시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오후 3시 35분께 청와대로 온 미용사로부터 약 20분간 머리 손질을 받은 뒤 오후 4시 30분께 방문 준비가 완료됐다는 경호실 보고에 따라 5시 15분께 중대본을 방문했다고 소명했다. 하지만 머리 손질을 마치고, 중대본 방문까지 1시간여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누락돼있다.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중대본을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고 말한 배경에 대해 "배가 일부 침몰해 선실 안이 침수됐더라도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 물에 떠 (선실 내부에) 있을 것이므로, 특공대를 투입해 발견할 수 있지 않으냐는 취지의 질문이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발언은 오후 5시15분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한 것으로 그가 참사 발생 7시간이 지났음에도 구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샀다. 세월호는 이미 오전 11시 30분께 뱃머리만 남기고 완전히 물속에 잠겼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온 뒤에도 관저에서 국가안보실, 관계 수석실 등으로부터 구조 상황을 보고받고 오후 11시 30분께에는 직접 진도 팽목항 방문을 결심했다고 대리인단은 주장했다. 당시 청와대 조리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날 저녁 여느때와 다름없이 관저 식당에서 TV를 보며 홀로 식사를 했다.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이튿날 오전 1시 25분과 오전 2시 40분에는 진도 방문 말씀 자료, 계획안 등을 받아보기도 했다고 설명했지만, 당시 급박한 수색 구조작업이 이뤄지고 상황에서 중대본 방문 이후 관저에서의 저녁 행적도 의문이 남는다.
헌재 측은 구체적인 답변 수준이 당초 요청에 못 미친다면서 답변서를 보완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측의 답변서는 상당 부분 대통령이 주장하는 세월호 참사 당일 보고 지시에 대한 것만 기재돼 있다”면서 “헌재가 요구한 것은 대통령의 기억을 살려서 당일 행적에 대해서 밝히라는 것으로 답변서가 (헌재의) 요구에 좀 못 미치는,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 소추위원 측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대통령측 세월호 7시간 제출자료는 짜깁기 수준"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회 측은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이 사실상 붕괴했다며 대통령 측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엄청난 사고를 인지한 시점 자체가 지나치게 늦었고 뒤늦게 첫 서면보고가 이뤄진 이후에도 이렇다 할 지시가 없었다는 것이다.
국회 측은 또 박 대통령이 관저에 머무는 바람에 사고 대응이 늦어졌다고 비판했다.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음으로써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는 바람에 '골든타임'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청와대 경내에 마련된 국가 재난 '콘트롤타워'인 위기관리상황실을 찾지 않은 것과 300여명의 구조가 촌각을 다투던 시점에 군·경 합동작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단골 미용사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1시간가량 '올림머리'를 한 것 등도 '직무 태만'의 근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