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자 백화점들이 기다렸다는 듯 세일에 들어갔다. 통상 백화점 세일은 주말을 앞둔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시작한다. 하지만 올초엔 백화점마다 직장인들의 새해 첫 근무일인 월요일(2일)을 세일시작점으로 잡았다.
세일기간 역시 ‘빅3’인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모두 2일부터 22일까지 총 ‘21일간’으로 정했다. 예년에 비해 기간이 5일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신년세일로는 이례적으로 경품까지 내걸었다.
‘착해진’ 백화점들의 신년세일. 어색한 이 상황은 왜 연출된 것일까.
내수 진작을 위해 정부가 나선 ‘코리아세일페스타’만 해도 유커(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린 면세점이 웃었을 뿐, 내심 매출반등을 노리던 백화점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추석 대목을 노리던 시기와 맞물려서는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백화점 매출상승의 발목을 잡았다.
급기야 백화점들은 ‘크리스마스 조기 단장’이라는 카드를 꺼내 매출극대화를 노렸다. 예년과 달리 지난해 11월초, 서울 주요 백화점 외관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되고 매장에선 크리스마스 시즌 제품이 일찍 선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백화점들의 실적으로 귀결되진 못했다.
그러던 사이 백화점들의 연말연시 대목을 결정적으로 우울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국정 전반을 뒤흔든 ‘최순실 게이트’다.
백화점 업계는 전통적으로 매년 11월과 12월, 연중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달이지만 가뜩이나 불황인 상황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한 ‘촛불 민심’까지 확대되자 소비절벽 현상이 극에 달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업체들의 매출전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실제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의 지난해 11월 매출은 전년보다 각각 0.5%와 1.5% 줄었고, 12월 25일까지 매출도 0.5%, 0.8% 감소했다. 롯데백화점은 겨울 정기세일 매출이 0.7% 감소했는데, 겨울 정기세일을 17일 이상 편성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매출신장률이 뒷걸음질 친 것은 처음이다.
특히 수 차례에 걸쳐 평균 10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서울 도심 주요 백화점들의 타격이 컸다. 집회 장소와 가까운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매출의 경우 무려 11.1%나 전년에 비해 고꾸라졌다.
심각한 상황을 지켜볼 수 없었는지 현재 백화점들은 나름의 ‘비상체제’를 가동했다. 1주일에 서너차례 임원들이 모여 매출대책을 강구하는가 하면, 일부에선 ‘반값 할인’ 마케팅을 준비하거나 설 선물 예약판매를 앞당기는 전략을 고민 중이다.
대표적인 유통채널로 자리잡은 백화점업계는 이처럼 매년 ‘위축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씁쓸한 부분은 ‘소비절벽’이라는 시장경제 잣대와는 별개로 백화점들이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인 변수로 인해 늘 움츠려왔다는 점이다.
2014년 전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세월호 사고', 2015년 국가 방역시스템의 허점으로 전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그랬고 지난해와 해가 바뀐 지금 국가 비상사태를 야기한 ‘최순실 게이트’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