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코리아]①개헌 통한 제도 틀 새판 짜기…닻은 올랐다

2017-01-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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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30년, 87년 체제 한계론 대두…탄핵·조기 대선과 맞물려 개헌 화두 정국변수 격상

2016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10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촛불 조형물 옆으로 한 빌딩 외벽에 '새해 인사'를 담은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제7공화국 건설을 위한 헌법 개정의 당위성은 자명하다. 최고 상위법인 헌법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틀을 관통하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개헌이 대한민국 국가시스템을 재설계하는 핵심 장치인 이유다. 사회 변혁의 정점에 서 있는 헌법이 87년 체제 이후 30년간 낡은 유물관에 갇히다 보니, 국가시스템의 오류 경보기가 곳곳에서 울린다. 

지난 2014년 4월16일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세월호 참사 역시 ‘중앙집권적 리더십’에 의존하는 정부조직 체계가 한몫했다. 베일에 싸인 박근혜 대통령의 당일 7시간 행적은 3년째를 맞은 정유년(丁酉年)에도 뜨거운 감자다. 권력의 집중화로 각 정부 부처의 자율적 분업 시스템이 무력화된 결과, 최고 권력자만 바라보는 복지부동이 독버섯처럼 전방위적으로 퍼졌다.
정치권력뿐만이 아니다. 예산과 재정도 중앙정부의 독점화로 불균형 상태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누리과정 예산(만3세∼5세 무상보육)을 둘러싼 기 싸움은 일상이 됐다.

승자독식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3권(행정·입법·사법)에서도 한쪽이 모든 것을 쥐는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이 횡행한다. 현재 입법권은 사실상 국회의 전유물이다. 각 부처는 중앙정부의 입맛에 따라 영속성 여부가 결정된다. 사법권도 헌법재판소와 대법권이 쥐고 있다. 자치 입법권과 자치 행정권, 자치 사법권의 힘은 미미하다.

◆ 개헌 첫 단추, 권력구조 변경…문제는 블랙홀
 

대한민국 헌법 개헌 일지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문제는 블랙홀 성질을 지닌 개헌의 속성이다. 1일 국회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개헌 논의의 첫 단추이자 걸림돌은 ‘대통령 권력구조 변경’ 문제다.

87년 체제 이전에는 독재자의 장기집권, 87년 체제 이후에는 권력 연장을 위한 게임의 룰이 작동했다. 그 결과 승자독식 구도가 고착, 사회 전반이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 권력구조 문제에만 집중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권력의 집중화가 개헌 논의 자체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권력구조는 크게 △4년 중임제·순수 의원내각제·이원집정부제(분권형 개헌) 등의 ‘통치 구조’ 변경 △차기 대통령 임기를 20대 국회 임기(2020년 5월 말) 맞추는 ‘임기 단축’ △대선 주자 중심이냐, 국회 중심이냐, 시민 주도냐의 ‘주체자 선정’ △대선 전 추진과 후 추진 등의 ‘시기’ 문제로 나뉜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현재 개헌 정국은 호헌파와 개헌파 구도다. 대세론에 근접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호헌파의 대표주자다. 새누리당과 비박(비박근혜)이 주축인 개혁보수신당(가칭) 내 일부 세력과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다수의 대권주자들은 분권형 개헌을 주장한다.

박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 맞물린 현 정국에선 통치 구조 변경과 함께 임기단축 개헌이 뜨거운 감자다. 차기 대통령 임기를 20대 국회의원 임기(2020년 5월)와 맞추는 안이 핵심이다. 이 경우 조기 대선 승자의 임기는 3년이다. 이달 중순 귀국하는 반 총장이 임기단축 개헌을 천명한 만큼, 정국은 개헌 블랙홀로 빠져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국민의 생활 전반과 직결한 개헌 논의가 일부 대권주자들의 전유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헌이 국민 중심이 아닌 각 정파의 동기나 협애한 이해관계에 따라 정계개편 불쏘시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개헌 논의와 관련해 “대권 주자들이 정계개편 등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이용한다는 것은 촛불 민심과 거리가 먼 것”이라고 꼬집었다.

◆ 개헌, 장기집권 획책용으로 전락…오욕의 역사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제8차 촛불집회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100m 안국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행진을 하며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아주경제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한국 정치사에서 개헌은 오역의 역사와 함께한다. 고(故)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정기 독재정권 체제에서 개헌은 대다수 정권 연장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6·10 민주항쟁의 산물인 87년 헌법까지 총 아홉 차례 헌법 개정 중 4·19 혁명 직후인 제3차(1960년 6월15일)와 제4차(같은 해 11월29일) 개헌을 제외하고는 소수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실제 이승만 정권은 초대 대통령의 중임 장치 마련을 위해 제2차 헌법 개정(1954년 11월29일)을 시도했다. 박정희 정권은 5·16 쿠데타로 제5차 헌법 개정 누더기로 만들었다. 이후 제6차(1969년 10월21일)와 제7차(1972년 12월 27일) 헌법 개정은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과 10월 유신을 위한 도구였다.

12·12 군사정변을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는 제8차(1980년 10월27일) 헌법 개정에서 7년 단임제를 채택, 민주화의 열망인 ‘서울의 봄’을 무력화시켰다.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를 근간으로 하는 1인 1표제의 국민주권원리가 짓밟힌 셈이다.

87년 체제를 통해 한국 정치는 ‘대통령 직선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얻어냈다. 재야세력과 넥타이부대, 시민들이 만들어낸 항거다. 하지만 87년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과는 달리, 사회 양극화 심화 등 ‘실질적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에 그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제7공화국 헌법 개정과 관련해 “87년 체제가 안고 있는 한계를 고민하고 새로운 헌법 개정을 통해 어떤 대한민국의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지,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단체, 국민들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제7공화국 헌법 키워드는 ‘분권과 경제’
 

탄핵 정국에 휩싸인 20대 국회. 정유년 정치권 최대 화두는 개헌이 될 전망이다.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현행 헌법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지방자치’와 ‘경제’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제9차 개정헌법에서 지방자치는 제8장과 제9장에 배치됐다. 이 중 지방자치는 전체 130조항 중 단 2개(제117조와 118조) 조항에 불과하다. 경제는 제119조∼127조까지 9개 조항으로 이뤄졌지만, 대다수 선언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과 각 정당의 중앙집권화의 문제가 ‘권력 독식’의 문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7공화국 헌법의 지방분권화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대표적인 지방분권 개헌론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헌법의 지방자치 조항의 문제로 △자치 입법권의 과도한 제한 △지방자치단체 종류의 법률 유보에 따른 불안정성 △지방재정 보장 미비 등을 꼽는다.

조세의 부과·징수·배분 등에 관한 중앙정부의 독점과 입법권의 국회 독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풀뿌리 민주주의 실종’이다.

한 교수에 따르면 헌법 전문의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부분에 ‘자율·조화·분권’을 추가하는 것을 비롯해 개정안 제1조 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에 기초한 복지국가를 지향한다’, 평화통일조항인 제4조의 평화적 통일 정책 수립 부분에 ‘지방분권적 평화통일정책 수립’ 등의 문언을 추가했다.

◆ 촛불혁명은 끝나지 않았다…개헌정국 변수
 

2016년 12월 31일 열린 제야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보신각을 향해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원식 기자]


또한 개정안 제42조1항에는 ‘주민으로서의 자치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를 두고, 그 안에 자치의회와 자치정부를 둔다. 단, 참의원의 의결을 얻어 제정된 법률로 주민의 총회가 자치의회의 권한 중 일부를 행사한다’ 등의 문언도 추가한다. 지방분권형 양원제 국회를 통한 진정한 권력 분립으로 한반도 통일을 위한 연방국가를 만들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경제조항의 수정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화약고는 시장주의와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규정한 ‘제119조’가 될 전망이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시장주의를 우선한 제1항이 경제민주화의 제2항보다 선(先) 순위에 있다는 이유로, 시장주의가 경제민주화를 앞선다고 주장한다. 조항의 순서부터 난항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다만 여소야대(與小野大)에 따른 경제민주화론이 불붙을 수밖에 없는 만큼, 제119조의 2항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는 부분에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문구를 추가, 분배와 기업 규제에 대한 당위성을 위한 위임 입법을 마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울러 제7공화국 헌법에 ‘재정 헌법’ 부분을 추가, 국채 발행 제한의 근거를 마련하거나, 헌법적 근거가 없는 기금 운용과 추가경정예산(예산) 사용 범위를 명시하자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이덕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표적인 재정 헌법론자다.

이 밖에 국민 기본권 조항의 손질을 비롯해 △대통령의 조약 체결권(제73조)과 제한적 국회 동의 절차(제60조), 감사원(제97조) 기능 중 회계검사의 국회 이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제111조) 등도 개정 대상으로 꼽힌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이와 관련해 “대통령 권력구조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등으로 많은 각론이 있는 만큼, 여야든 대권주자든 심도 있는 논의를 하지 않을 경우 개헌은 블랙홀로 작용할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국민 공론화 과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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