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에서 영화 ‘목숨 건 연애’(감독 송민규)는 가장 하지원답지 않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비공식 수사에 나선 추리 소설가 제인과 순경 록환(천정명 분)의 이야기는 이제껏 하지원이 보여주지 않았던 허당의 모습을 확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하지원과 제인은 그리 먼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사랑스럽고 유쾌한 하지원의 면모는 제인, 그 자체였으니까.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고 해서 사랑스러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어요. 대신 더 만화 같은 느낌이길 바랐죠. 예컨대 제인의 걸음걸이나 움직임이 만화 속 탐정 같은 느낌이었으면 했어요.”
“한국영화에서 이런 연기가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까, 평소 제 모습을 많이 녹이려고 했어요. 제가 은근히 장난기도 많고 짓궂은 구석이 있거든요. (연기적인 부분에) 아이디어를 많이 냈고 감독님도 제 모습을 녹여내는 것에 찬성하셨어요.”
하지원의 시선이나 손짓, 표정 등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 현재의 제인으로 태어난 셈이다. 이는 자칫 민폐 캐릭터로 전락할 수 있는 제인을 사랑스러운 인물로 뒤집는 하지원 표 치트키(게임의 유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일정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사건을 벌이고 허술하게 매듭짓거나 여기저기 신고를 하는 모습이 민폐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하하. 하지만 그게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고 정신이 투철하다고 해석했어요. 어쩌면 정의로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죠. 그런 모습들이 귀엽게 느껴질 수 있도록 저 역시도 많이 신경 썼고요. 연기적으로도, 외적으로도요.”
하지원은 고민을 거듭했다. 어떻게 하면 제인이 더 재밌게 느껴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그는 고민 끝에 박시한 외투나 판초 우의, 보이시(Boyish)한 의상 등으로 제인의 외형을 만들어 갔다. 제인의 여성미보다는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를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했고, 실제 자신의 옷을 입거나 직접 옷을 구매하는 등 외적인 부분에도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제인이 입고 나오는 망토도 사랑스러움을 끌어올리려는 노력 중 하나였어요. 여성스러운 라인보다는 보이시하고 동그란 라인으로 보이게끔 노력했죠. 색감이나 디자인적인 부분에서도 ‘제인스러운 것’을 찾고자 했어요. 이런 캐릭터들의 디자인은 예전부터 해왔던 거예요. 영화 ‘내사랑 내곁에’나 드라마 ‘기황후’ 때도 디자인을 내거나 인터넷에서 직접 의상을 구매하곤 했어요.”
‘목숨 건 연애’는 여러모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작품이었다. 코미디와 스릴러, 로맨스를 넘나드는 장르는 물론이고 거친 액션과 긴 영어 대사도 소화해야했으니까. 하지만 하지원은 “오히려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마음이 편했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코미디를 잘하는 배우는 아니거든요. 대개 코믹한 상황을 주고, 저는 진지한 상황을 연기했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어요. 과민대장증후군을 겪는다거나, 뻔뻔하게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습은 더 진지했어요. 또 어떤 부분에서는 스릴러의 장르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 더 진지하게 임하기도 했고요.”
제인은 소설 집필에 관한 스트레스로 과민대장증후군을 겪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새어 나오는 지독한 방귀는 극 중 제인을 비롯해 배우 하지원도 당혹하게 하기 일쑤. 그는 “방귀 뀌는 연기는 감독님의 지시에 따라 그대로 진행했다”고 전했다.
“사실 저도 여배우다 보니 방귀를 뀌는 설정이 민망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방귀 소리 좀 귀여운 거로 입혀주시면 안 돼요?’하고 부탁도 하곤 했었는데…. 임시편집 때 보니 방귀 소리가 바뀌었더라고요? 하하하. 제가 바라던 방귀 소리는 아니었지만, 파급력이 세 보여 재미있었어요.”
이리 구르고, 저리 망가져도 하지원은 여전히 ‘케미스트리(Chemistry)의 여왕’이었다. 그는 오랜 친구인 설록환이며 갑자기 나타난 이상형 제이슨(진백림 분)과도 각기 다른 케미스트리를 뿜어냈다.
“케미스트리의 근원은 즐거운 촬영장 분위기인 것 같아요. 천정명 씨와 진백림 씨 덕분에 즐겁고 유쾌하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두 분은 극 중 캐릭터와 딱 반대되는 성격이에요. 정명 씨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고, 진백림 씨는 외국인인데도 현장 스태프며 배우들과 잘 어울렸죠. 그런데 둘 다 촬영만 시작하면 확 바뀌더라고요. 특히 정명 씨는 실제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연기를) 잘 받아주고, 편하게 대해줘서 좋았어요.”
실제 하지원에게 제인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그에게 ‘오래 알고 지낸 남자와 갑자기 나타난 이상형 중 어떤 이에게 호감을 느끼겠느냐’고 물었더니 “남자 사람 친구가 없다”며 멋쩍게 웃어버린다.
“저는 연애면 연애, 친구면 친구라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만약 끌린다면 제이슨 같은 운명적인 상황, 이상형에게 더 호감을 느길 것 같아요.”
올해, 하지원은 영화 속 제인 만큼이나 다사다난한 일을 겪어왔다. 지난 4월 중국과 동시 개봉하려던 ‘목숨 건 연애’가 한한령(限韓令 | 한류 금지령)으로 중국 개봉이 무산되며 뒤늦게 국내 관객과 만나게 됐고, 박근혜 대통령이 한 병원에서 하지원이 연기했던 캐릭터명인 ‘길라임’(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곤욕을 겪기도 했다.
“아쉽고, 속상하죠. 특히 ‘목숨 건 연애’ 중국 개봉은 한중 합작이 아닌데도 동시 개봉하자는 제안이 왔고, 상하이 영화제에서도 인기도 좋아서 기대가 컸거든요. (개봉이) 무산돼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길라임 같은 경우는 저보다 팬들이 더 속상했던 것 같아요. SNS 댓글을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다들 속상하고 놀랐을 텐데 제게 먼저 ‘힘내요’, ‘언니가 길라임이에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래서일까, 2017년을 맞는 하지원의 소감은 조금 더 남달랐다. 그는 “가족, 지인 그리고 팬들까지 사랑하는 분들 모두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진심을 전했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만날 생각이에요. 거장 감독, 신인 감독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