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아고산 침엽수림을 위협한다

2016-12-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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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섭 환경부 차관]

 
이정섭 환경부 차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에는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古木) 몇 그루가 한 겨울 추위 속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추사 선생은 유배 중일 때 변함없이 자신을 대하는 제자를 보면서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려 이 그림을 그렸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라는 구절이 있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는 의미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상록침엽수다. 이들 나무는 엄동설한 강한 바람 속에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우뚝 서 있다. 그래서 지조와 충절을 중시하는 우리민족과 늘 함께 했다.
나무는 잎의 수명에 따라 낙엽수와 상록수로 구분된다. 잎의 모양에 따라 활엽수와 침엽수로 나뉜다. 침엽수의 대부분은 상록수이며, 잎이 대개 바늘같이 뾰족하다. 그래서 바늘 침(針)에 잎 엽(葉)자를 붙여서 침엽수라고 한다. 대체로 건조하고 추운 기후에 강한 식물이다. 일반적으로 고산(高山)지대 아래인 아고산(亞高山)지대에 많이 자생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고산 침엽수는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눈측백, 눈잣나무, 눈향나무 등이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설악산, 오대산, 속리산,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 그리고 한라산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다. 특히, 구상나무(Abies koreana)는 한반도 특산식물로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 등 제한된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세계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을 받는 나무다.

이러한 아고산 침엽수림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결과로 볼 때 구상나무는 지리산과 한라산 등에서, 분비나무는 오대산과 설악산에서 현저하게 고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리산 반야봉(1,732m)일대에서 구상나무숲의 고사율은 80%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침엽수의 고사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흰수피소나무는 1990년부터 2007년 간 50% 이상 고사되었고, 콜로라도와 캘리포니아의 침엽수종들이 급격히 말라죽으면서 절멸위기에 처해있다

최근 구상나무는 기후변화의 영향 등으로 개체군이 축소되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Redlist)에 멸종위기종(endangered)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후변화생물지표 종으로 지정됐다. 아고산 침엽수의 고사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간의 연구를 분석한 결과 기온상승과 강풍, 폭우 등 기후변화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동안 환경부는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산하 기관과 함께 아고산 침엽수림의 적정한 관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올해 8월에는 이를 좀 더 체계화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확한 쇠퇴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리산 등 국립공원의 아고산 침엽수림 분포현황지도를 작성하고, 과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근본적인 고사원인을 밝혀낼 것이다.

생물은 내성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서식처의 환경이 변화되면 다른 적정한 서식지로 이동하거나, 변화된 환경에 유전적으로 적응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침엽수종의 생리적 특성과 환경요인 간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서식지를 발굴하는 한편 환경변화에 강한 유전인자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종자를 보존하고 어린 묘목을 증식하는 등의 복원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지구의 기후는 오랜 기간 변화해 왔고, 자연 생태계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며 발달해 왔다. 그러나 최근 급속한 기후변화는 생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구상나무는 한반도에만 서식하는 특산식물이다. 우리 땅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멸종되는 것이다. 구상나무를 지키는 것은 인간의 역사보다 오랜 한반도의 자연사를 보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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