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호 한양대 교수는 30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외교·안보·라인이 한·중 관계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철저한 반성과 함께 외교·안보·통일의 라인업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한·중 관계가 정상외교로 공고화되면서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구조로 인해 외교안보 라인이 한·중관계에 사실상 기여한 바가 없는데다 참모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외교안보 분야에도 최순실 게이트의 해악이 미쳤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향후 한·중 관계를 발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방안을 문 교수에게 들었다.
"한국 국내 정치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에 (외교적으로)뭐가 된다, 안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발한 것과 비교해 이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과 관련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중국에서 중국 측 학자들과 회의를 했는데 아직도 사드를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련 혹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작 놀랐다. 중국은 한·미·일 정보보호협정을 묶어주는 사드가 하드웨어의 연결이라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소프트웨어의 연결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중국은 기분은 나쁘지만 어차피 이 상황에서 사드나 한·일 군사비밀정보협정을 하나의 패키지라고 보는 것 같다."
▲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중관계가 많이 악화됐다는 평가가 있다.
"사드에 관해 중국 칭화대 옌쉐퉁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드는 군사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군사적 효율성 문제가 아닌 정치적 사안의 문제란 이야기다. 중국은 또 사드 배치 문제를 한·중 간의 문제가 아닌 미국과 중국 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원래 힘 센 큰 사람들끼리 싸우다 보면 힘없는 사람들은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 지적하신 대로 사드가 미·중 간 문제인데 중국이 한류 금한령을 내리는 등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한·중 관계를 이야기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서로에 대한 인식 차이다. 즉,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의 비대칭성이 너무 커져 해결이 안 될 정도다. 양국 간 조화가 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중관계는 희망적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2013년 출범하면서 한·중관계에 대한 네이밍(naming)을 많이 고민했다. 이미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였던 한·중 관계를 질적으로 올려보자는 주장에 따라 '내실화'를 넣었다. 두번째로 희망적이었던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박 대통령이 서로에 대한 신뢰관계가 돈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장밋빛으로만 전망하다 보니 서로에 대한 희망적인 사고가 현실 판단을 그르치게 된 것이다. '한·중 정상이 만나면 다 돼'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그 최절정이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의 천안문 망루외교였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굉장한 강한 신뢰관계를 보였고 어떤 측면에서는 박 대통령이 더 강하게 느낀 것 같았다. 박 대통령은 귀국 후 통일 논의에 들어갔다. 마치 중국이 남한의 통일논의에 공조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바로 이 부분부터 한·중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중국은 남북한 통일에 대해 항상 원칙적인 입장만 밝혔다. 그 원칙은 평화와 자주였다. 중국의 그러한 태도를 우리 정부가 오해한 것 같다. 중국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관계가 좋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을 우리 정부가 파악하지 못했다. 그 후 1월과 9월에 북한의 핵실험이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중 간의 갈등은 이미 잉태된 상태였다."
▲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외교 라인에 문제가 많았던 것 같다.
"한·중관계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모든 걸 결정하는 구조였다. 그러다보니 외교안보 라인이 한·중관계에 아무 것도 한 게 없다고 보면 정확하다. 이 부분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는 와중에 이번에는 한국의 국정중단 사태를 보고 중국인들은 단적으로 한국의 외교정책을 불신하는 것 같다. 중국은 무엇보다 한국의 외교가 한·미동맹에 경도돼 자주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을 굳혀가고 있다."
▲ 중국에 대한 이해부족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현재의 국정중단 상태를 보고 중국은 우리를 칸부치(看不起·무시하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국은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해 은근히 부러워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중국의 태도는 크게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드배치의 경우 정부가 정한 원칙대로 밀고 나가는 모습을 중국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외교안보는 원칙을 갖고 정한 뒤 정하면 밀고 나아가야 한다.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을 떠나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결정했으면 그것을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사람들이 이번 사드 사태를 보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또 있다. 사드 배치 지역의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처음에 결정한 부지를 바꾸는 부분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체제의 차이에서 오는 부분도 있지만 국가가 정한 일을 지역에서 반대한다고 바꾸는 것을 중국은 리더십의 부족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정부는 원칙과 이미지 메이킹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선 불가능하다. 외교안보 라인이라도 바뀌어야 중간이라도 끌고 갈텐데 이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일각에서 대통령이 외치를 담당하고 총리가 내치를 담당한다고 하는데 안될 말이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외교가 가능한가. 따라서 하루속히 외교안보라인을 바꿔야 한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공무원들이 담당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의 이미지 메이킹을 다시 해야 한다."
▲ 새로운 외교안보 라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 남북관계가 삐걱거리는데 한·중관계도 좋아질 수가 없다. 즉, 한·중관계를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의 화해가 중요하다. 북·중관계도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북·중관계 역시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중국 입장에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미국이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과도한 개입도 견제할 것이다. 페리보고서로 상징되는 시기에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급속하게 가까워지는 것을 중국이 못마땅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을 이용했다는 인식도 갖고 있다. 결국 서로 얽힌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풀어줄 단초는 남북관계의 진전이고 이를 위해서라도 빨리 외교안보 라인을 새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 양안관계에 있어서 국내 권위자로서, 양안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중국과 대만, 즉 양안관계는 남북관계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미 경제·사회분야는 활발한 교류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문제에 있어서는 첨예한 대립이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말을 두고 중국과 대만은 서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중국은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로 인식한다. 따라서 대만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치적 지위가 올라가지 않는다. 대만사람들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양안관계에 비쳐볼 때 부러운 것은 그들의 활발한 경제·사회 및 인적 교류다. 양안관계와 남북관계 모두 정치적 해결방법은 없는 만큼 경제와 사회교류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문흥호 교수는
△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타이완 푸싱강(復興崗) 정치연구소 석사, 한양대 정치학 박사 △ 현대중국학회 회장(2009년 1~12월) △ 미국 오리건대학교 정치학과 초빙교수(2006년 9~2007년 8월) △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2004년 8~ 2008년 7월) △ 한국정치학회 특임이사(2000년 1~) △ 한양대 국제학 대학원장 겸 중국문제연구소장을 역임. 저서로는 '13억인의 미래(1996)', '대만문제와 양안관계(2007)', '중화전통과 현대중국(공저, 2012)' 외 다수.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강정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