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거대권력 쇠퇴가 주는 메시지

2016-11-23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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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정보과학부장]

대한민국이 열병을 앓고 있다.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무너졌다", "무정부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역사상 최악의 국기 문란, 국기파괴 사건", "탄핵만이 살 길"라는 말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갈수록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의 동상이몽 속에 혼돈의 정국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검찰 중간 수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사실상 버티기를 선언하면서 정국 혼란이 한층 가중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교민들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지만 장본인 박대통령은 내달 초부터 진행될 특별검사 수사를 앞두고 복수의 변호인을 추가 선임하는 등 '장기 법리논쟁'을 준비하고 있다. 식물행정부·국정 마비가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청와대가 역할을 못하고 정치가 실종되면서 한국 경제도 깊은 수렁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한 언론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10곳 중 8곳이 내년 투자규모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거나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고용 역시 10곳 중 6곳이 올해보다 늘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당장 최순실 국조특위 증인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허창수 회장(GS그룹 회장), 이승철 상근부회장을 포함해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회장, 최태원 SK그룹회장 등 재계 9명의 그룹 총수가 채택된 상황에서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기대하는 것이 요원해졌다.

이른바 '박근혜 게이트'에 미국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까지 겹쳐 재계가 방어적인 입장에서 경영에 나서면서 추가 감원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내수 침체 우려도 가뜩이나 암울한 한국 경제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9월 소매판매는 전달 대비 4.5% 감소하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판매 중단, 폭염효과 소멸, 이른 추석·농산물 가격 상승 등 요인이 영향을 미치며 가전·휴대전화, 음식료품 등 소비가 주저 앉았다. 10월 들어서도 민간소비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국산 승용차의 내수 판매량은 작년 같은 달보다 11.5%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비 위축이 전체적인 내수 침체로 이어져 경제의 활력을 낮추고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리스크는 한반도 주변 정세에 엄청난 위협이 될 요소가 많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실행되면 글로벌 무역환경이 얼어붙어 우리 수출에 큰 악재가 예상된다. 이는 부진한 내수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진출에 나서려는 국내 중소기업에 넘지 못할 장벽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최악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국정의 콘트롤타워가 무너져 정부 업무도 사실상 마비되다시피 하고 있다. 청와대의 국정리더십은 땅에 추락했고 새누리당은 분당을 논할만큼 사분오열됐다. 거대야당은 박 대통령 퇴진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근로자들은 감원칼바람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으나 청와대와 내각, 여야정당은 정쟁에 함몰돼 민생 경제는 뒷전이 되버렸다.

국정공백이 이런식으로 거듭된다면 기업은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우리 경제는 더깊은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는 박 대통령이 끝까지 버틴다면 탄핵절차에 바로 돌입해 국정혼란을 종식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포린 폴리시' 편집장을 지낸 모이제스 나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본인의 베스트셀러 '권력의 종말'에서 권력의 쇠퇴를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이제 권력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많은 것을 얻지 못한다. 21세기에 권력을 얻기가 전보다 수월해졌지만 권력을 잃는 것 또한 더 쉬워졌다. 반면에 권력을 행사하기는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우리의 과제는 사회에 잠재된 정치적 에너지를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으로 재창조하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혁명을 피하는 것이다. 권력을 잡고 휘두르고 유지하는 방식이 바뀜에 따라 우리는 권력을 지배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하며 마침내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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