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 촛불정국이 중대 분수령을 맞았다. 영수회담 제안을 철회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헛발질로 야권이 최대 위기에 봉착하자, 당내 주류 좌장인 문재인 전 대표까지 촛불정국에 등판하며 박 대통령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여야의 차기 대권잠룡과는 달리, 그간 수위조절에 나섰던 문 전 대표는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촛불정국에서 문 전 대표가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 대통령 권력 이양 방안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野, 질서 있는 퇴진 고리로 과도내각 구성
관전 포인트는 야권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다. 애초 박 대통령의 권력 이양 방법에는 △책임총리제를 통한 현 권력유지 △2선 후퇴에 따른 거국중립내각 △질서 있는 퇴진을 통한 과도내각 구성 △즉각적인 하야 후 조기 대선 △탄핵 후 조기 대선 등이 크게 다섯 가지가 있었다.
‘김병준(국무총리 내정자) 카드’가 깔린 책임총리제와 거국중립내각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추 대표의 영수회담 전까지 민주당 온건파 내부에선 2선 후퇴가 현실적이라는 기류가 강했지만, 당 주류의 독단적·독선적 리더십이 애초 ‘2선 후퇴’였던 당론을 ‘퇴진’으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
남은 카드는 질서 있는 퇴진을 통한 과도내각 구성과 하야, 탄핵이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질서 있는 퇴진이다. 문 전 대표도 이날 “대통령이 선언한 뒤 질서 있는 퇴진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쟁자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도 같은 날 서울역에서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서명운동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 전 대표의 입장 선회에 대해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모아야 할 때”라며 “(문 전 대표도)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박 대통령 퇴진 시기→제시→여야 합의로 과도 내각을 구성→대통령 즉각 사임→60일 내 대선’ 등의 절차를 거친다. 박 대통령이 퇴진 시기를 결정하는 날로부터 약 60일 정도 소요된다. 약 8개월 정도 걸리는 탄핵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국정 공백을 막을 수 있는 셈이다.
◆ 하야·탄핵은 압박용…개헌 변수, 왜?
즉각적인 하야와 탄핵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창하는 즉각적인 하야는 ‘박 대통령의 즉각 사퇴→사퇴 날로부터 60일 이내 조기 대선’ 등의 수순을 밟는다. 질서 있는 퇴각과 비슷하지만,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국정 공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카드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인 김무성 전 대표가 거론한 탄핵은 ‘탄핵안 발의→탄핵안 의결→180일 내 헌법재판소 결정→60일 내 대선’ 등을 수순을 밟는다. 가장 정치적 책임이 큰 카드지만, 발의(재적 의원 과반)와 의결 요건(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현실성이 적은 데다, 시간이 최소 240일에서 최대 무한대라는 점이 걸림돌이다.
문 전 대표는 “지금은 탄핵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탄핵까지 간다면, (박 대통령은)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개헌’이다. 질서 있는 퇴진을 통한 과도내각 구성의 최대 쟁점은 제7공화국을 위한 헌법 개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이 하야한 뒤 과도내각 구성의 주도권 흔들기 카드는 사실상 개헌 이외에는 없다. 여의도 정치권이 촛불정국의 파고를 넘는다 하더라도 ‘개헌 블랙홀’을 넘어야만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권력 이양 방안에 대해 “정치권이 계속 대화와 타협을 해서 질서 있는 퇴진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시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더라도, 정치권은 의회 내에서 협상을 하면서 완충 작용을 하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