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제2의 최순실 탄생? 표현의 자유에 달렸다

2016-11-1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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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부 이정주 기자]

‘미 합중국 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 또는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고충 처리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해선 안된다’

미국 연방 수정헌법 1조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충격과 혼돈에 빠졌다. 취재를 하면서도 깜짝 깜짝 놀란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언비어라며 그렇게도 비난하던 소문이 현실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이젠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 사건의 원인과 대책을 고민하다 문득 미 연방 수정헌법 1조가 떠올랐다.

최순실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최순실 게이트의 폭풍에 휘말려 솔직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대통령에 대한 비난, 문책, 탄핵, 구속. 다 좋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제2, 제3의 최순실의 탄생을 막을 순 있을까. 특정 사안에 연루된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인간의 근원적 탐욕을 막을 수 있다면 애당초 이런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원인은 유권자를 억압하는 선거법,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최순실과 박 대통령과의 관계는 이 정권이 들어서기 한참 전부터 이어져왔다. 그럼에도 2012년 대선에서는 왜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을까. 야당을 탓하는 게 아니다.

유권자들의 손발을 묶는 대한민국 선거법이 근본 원인이다. 정치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 영국 등에서 시민단체의 낙선 운동은 합법이다. 우리나라는 2001년 8월 낙선운동을 금지하는 선거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맥이 끊어졌다.

나아가 이들 국가에서는 선거운동 기간 및 방식 등에 제한이 없다. 다만, 선거비용에만 제한을 둔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돈 선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간판을 자신의 자동차나 자택에 부착할 수도 있다. 캐나다에는 세입자가 지지 후보의 선거포스터를 자택에 부착하는 행위를 집주인이 막을 수 없도록 규정한 조항까지 있다.

대한민국? 어림없다. 어느 정치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간·주체·방법별 규제 조항을 선거법에 넣어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겉옷만 걸쳤을 뿐, 속내는 아직 중세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이미 사고가 터진 마당에도 아쉬움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말에 관용적이었다면, 정치판에서 오가는 말들을 ‘진흙탕 싸움’이 아닌 ‘토론을 통한 의견 수렴의 과정’으로 바라봤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기 전에 혹시 걸러낼 수 있진 않았을까.

본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선거제도는 우리가 만든 제도가 아니다. 서구에서 수입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겉모습만 흉내낼 뿐, 실질적인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이 기형적 구조를 방치한다면 우리는 또 조만간 제2의 최순실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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