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항파두리 삼별초 항쟁의 "역사 속으로"

2016-09-25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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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파두리' 몽골에 대항 결사항전의 최후의 보루지

김통정의 '장수물' '살맞은돌' '항파두리성' 등

▲메밀꽃과 항파두리 토성


아주경제 진순현 기자= 제주는 한·중·일 해상 교통의 중심지로 옛부터 외침이 잦았다. 대정읍 상모리 앞 바다에는 ‘물무덤’이라는 지명에 따른 전설이 흐른다. 용천수를 구하러 온 왜적들이 마을 아낙네를 검탈하는 사고가 나자 마을사람들이 협의해 용천수를 묻었다 해 지금도 이곳을 ‘물무덤’이라고 부른다. 이래서인지 옛 제주사람들은 외부인의 접근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이방인. 
북쪽 먼 바다에 배 여러 척이 보였다.
봉화대 여러 곳에서는 위급 상황을 알리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평온했던 섬은 분주해졌다.
 

 

고려 말 평온했던 제주 섬에 ‘삼별초’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한 결사항전의 최후의 보루지로 섬에 들어왔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주민들은 불러 모았고, 몽골 침략에 따른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성을 쌓기 위해 제주민들을 역부로 강제 동원령을 내렸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격이었다. 이후 이들의 겪은 고초는 상당했다. 전설에 따르면 김통정 장군이 토성을 쌓을 때는 매우 흉년이었다. 역군들은 굶주림에 자신의 똥까지 먹을 지경이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 해안을 둘러친 300리 장성인 ‘환해장성’도 이때부터 축조되기 시작됐다. 환해장성을 중국의 만리장성으로 비유해 불린다.

항파두리성은 750여년전 몽골의 침입에 맞서 40여 년 간 끈질지게 항쟁했던 삼별초군의 장렬하게 최후를 맞은 곳이다.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한 고려시대 토성으로 지금은 제주항파두리 항몽유적지라는 명칭으로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396호로 지정·고시돼 있다.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권의 무력적 보위기구로 40여 년 지속된 대몽항쟁의 핵심부대였다. 이들은 1270년(원종 11) 고려가 몽골족의 나라 원(元)에 굴복해 강화를 맺은 것에 반기를 들고 진도를 거점으로 새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진도의 용장산성이 이듬해인 1271년(원종12) 5월 여·몽연합군 공격으로 함락되자, 김통정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제주에 들어오면서 항파두리성이 삼별초의 최후의 보루지가 됐다.
 

 

최근 항몽유적지는 역사가 흐르는 관광지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관광지 주변에는 메밀꽃이 화사했다. 3.8㎞(10리)에 이르는 토성 사이로 관광객에 놀란 꿩들이 날아 올랐다.
 

 

▲[사진=제주올레]

 

이와 함께 올레 16코스는 계단을 따라 굽이굽이 숲길로 향했다. 

 

▲'돌쩌귀'는 삼별초군이 항파두리성 성문의 밑틀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춧돌이다. 항파두리성에는 네 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 돌쩌귀 10기가 보존돼 있다.

▲항파두리 내성. 외성 안 중심부에 돌로 쌓아 둘레 750m의 정사각형 석상의 형대를 이루고 있다.

▲토성 위로 말이 달릴 수 있게 만들었다. 폭이 2m 가량 된다.

 

항파두리성의 둘레는 약 6000m, 면적은 113만5476m2(34만3481평)이나 된다. 길이가 약 6km, 외성과 내성의 이중성으로 쌓여있다. 내성은 외성 안 중심부에 돌로 쌓은 둘레 750m의 정사각형 석상이고, 외성은 흙으로 만들어진 토성이다. 토성은 김통정 장군이 삼별초군의 거점지인 항파두리에 흙을 이용해 길이 3.8km에 달하는 토성을 쌓아 만들었다. 그리고 토성 위는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군사도로로 활용됐다. 폭이 2m 가량 된다.
 

 

성은 동쪽에는 고성천, 서쪽에는 소왕천이 있어 지형적으로 천연적인 방어 요새를 이루고 있다. 특히 성의 북서쪽에서 솟아나는 구시물 등 용천수와 각 하천의 웅덩이 등의 고인 담천수는 생활에 필요한 음용수로 쓰기에 충분했다.
 

▲‘구시물’은 성밖 서민 및 병사들의 음용수로 사용했던 물이다.

▲‘옹성물’은 항파두리성 북쪽 극락사 사찰 경내에 있는 생수로, 삼별초가 항파두리에 웅거할 당시 귀족계급들이 음료수로 사용했던 샘물이다. 지금은 물이 말라 형태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견고한 항파두리성은 1273년(원종14) 고려의 김방경과 몽골의 홍다구 장군 등이 제주에 이끌고 들어온 여·몽연합군 1만2000명에 의해 4일 만에 함락되고 만다. 삼별초군은 끝까지 저항 했으나, 워낙 병기와 숫자가 모자라 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3년여 동안 이어진 제주 삼별초의 항몽활동이 종식됐다.

여·몽연합군에 의해 항파두리성이 함락 되었으나, 김통정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70여 명을 이끌고 한라산 지대로 들어가 목매어 죽었다. 그를 따르던 장수 등 70여 명도 모두 죽음을 당했다.
 

▲항몽순의비는 삼별초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7~1978년까지 9000여 평의 대지에 세웠다. 비석 전면의 ‘항몽순의비’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김통정의 대몽항쟁 전설과 유적

‘붉은오름’은 지금의 한라산 어리목코스 서쪽에 자리잡은 해발 1061m의 오름이다. 여·몽연합군이 항파두리성을 포위해 총공세를 가하자 김통정 장군이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성을 탈출해 최후의 항전을 펼치다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이들이 죽을 때 흘린 피가 일대를 붉게 물들었다고 해 붉은오름이란 이름이 생겼다.
 

▲‘장수물’은 김통정 장군이 관군에게 쫓기다가 토성 위에서 뛰어 내릴 때 바위에서 발자국이 패여 그곳에서 샘이 솟아나게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살맞은 돌’은 극락오름에서 삼별초군이 궁술 연마시 과녁으로 사용했던 거대한 돌로, 화살이 박혔던 것과 같은 자국이 남아 있다. 돌 구멍이 살 맞은 자리다.


몽골 직할통치

삼별초가 무너진 후 몽고는 제주에 탐라총관부라는 직속기구를 설치하고 지배한다. 제주를 거대한 목마장으로 삼아 원나라의 군사들이 자그만치 1500여 명 가량이나 주둔하며 100년 동안 직할령으로 통치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주는 몽고의 영향을 받아 ‘오름’ ‘부락’ 등 몽골어 차용의 제주어, ‘오메기술’ ‘오메기떡’ 등 제주 고유음식, 말(馬)과 관련 시설물 등 문화전반이 지금도 잔재돼 있다. 

몽골의 제주 100년간의 지배는 고려 공민왕의 명을 받은 최영 장군의 공격으로 끝이 난다.

제주 사회의 주도권이 고려 공민왕(1352~1374)때 이르러서는 목호세력이 장악했다. 목호세력은 몽골의 탐라 국립목장에 배속돼 말과 소 등의 방목을 관할하던 몽골족이었다. 목호는 고려 정부에 맞설 정도로 독자적 세력기반을 가졌으며, 원이 망한 후 중국의 새 주인으로 등장한 명(明)이 제주 말(馬) 2000필을 뽑아 보낼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직접적 계기가 작용하면서 1374년(공민왕 23) 목호세력과 고려는 제주에서 총력전이 펼쳐진다. 제주 출정군의 총사령관은 최영이고, 출정군은 정예군 2만5000여명과 전함 315척으로 구성됐다. 한 달여 간 전투를 치렀던 목호 정벌로 목호세력은 결국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최영장군이 제주에 목호세력을 정벌하러 가 있는 동안 개혁정치를 단행해 나라를 바로 잡아보려는 공민왕이 시해됐다. 이로써 고려는 멸망의 길에 이르게 된다. 

새별오름은 애월읍 봉성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말 ‘목호의 난’때 최영 장군이 이끄는 토벌군이 몽골군과 격전을 치룬 곳이다. 지금은 들불축제장으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항파두리 내성지 내 건물지 


항파두리 내성지 내 건물지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지난 2013년 첫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11동과 부속시설 등이 확인됐다. 건물지는 남쪽의 중정을 사이에 두고 ㅁ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건물지 내부에는 아궁이 시설이 설치돼 있고, 건물지와 건물지 사이에는 배수로가 축조되어 있어 고려시대 당시 중요한 건축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 출토유물로는 무기류, 고누놀이판, 청자, 기와류 등 다양한 유물이 확인돼 고려시대 무기사, 민속, 제주도의 기와제작 등 다양한 학술적 자료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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