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개봉한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감독 강우석·제작 ㈜시네마서비스·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유준상은 대동여지도를 독점하려는 시대의 권력, 흥선대원군 역을 맡았다.
난치는 것을 배우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들었다
- 처음에 강우석 감독님께서 ‘준상아, 흥선대원군이 난을 치는 장면은 네가 꼭 해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 몰랐다. 하하하. 그 한 장면을 위해 경주까지 찾아가서 박대원 선생님께 난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런데 정작 경주에 가니 난치는 건 안 알려주시고 삶이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다. 하지만 그게 진짜 기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실을 탄탄히 하고 시작한 셈이다
- 흥선대원군의 역사에 대해 공부했다. 제게는 좋은 시간이었다. 집에서 계속 글씨 연습을 했고,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간이 상당히 중요했던 것 같다. 제가 출연하는 신은 많지 않았지만 중요한 역할이었고, 내실을 다지면서 더 좋은 표현과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래 기다린 만큼 난치는 씬에 대한 기대가 컸겠다
- 기대도 크고 부담도 컸다. 모든 스태프와 선생님이 현장에 직접 계셨었다. 선생님이 기본 골격을 만들어주시고 저는 한 획을 그려 넣었다. 굉장히 힘이 많이 들어갔다. 제가 실수해버리면 이 모든 시간이 수포가 되는 거니까. 함께한 스태프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싶었다. ‘아, 저 사람이 진짜 열심히 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상당히 경건한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다.
그림에서도 흥선대원군의 성격이 드러나야 하니, 어려움이 컸겠다
- 흥선대원군은 예술적 기질이 뛰어나다. 미술 평론을 하는 분들도 당대 최고의 난을 치는 사람이라고 칭찬할 정도다. 한 번에 모든 걸 끝내는 성격이라 저 역시도 (난을) 한 번에 그릴 수 있도록 집중했다. 별 게 아닐 수 있는데 선 하나 긋는 게 이 캐릭터를 말해주는 거로 생각했다. 많이 연구했고 이걸 시작으로 흥선대원군 역을 많이 맡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하하.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흔히들 양날의 검 같다고 한다
- 다행히 그런 부담감은 없다. 도리어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어사 박문수’ 등을 연기할 때도 ‘고산자’를 연기할 때도 오히려 ‘정말 재밌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 역시 어떻게 하면 흥선대원군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역사학자들의 이야기들 들어보고 그를 추측해나가는 과정을 겪었다. 퍼즐을 맞추는 시간 같았다. 주어진 대사 안에서 마치 흥선대원군의 강단, 해학과 유머 등 많은 걸 담아내고 싶었다. 이제 막 알아가는 흥선대원군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 하하하. 그래서 또 한번 해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잘 알고 시작한 것과 모르고 시작하는 것의 차이는 클 것 같은데. ‘많이 배운’ 유준상의 흥선대원군 디테일은 무엇이 있을까?
- 디테일 보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그의 난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난이 아름다우면서 슬프게 느껴질 수 있을까’ 하는 것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사나 행동에 디테일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강우석 감독님은 흥선대원군 역을 두고 ‘분량이 너무 적어’ 유준상에게 추천하기 미안했다고 했었다
- 저는 그냥 무조건 출연하려고 했다. ‘전설의 주먹’을 끝낸 뒤, 강우석 감독님께 ‘20번째 작품은 무슨 역할이든 할게요’하고 약속을 했었으니까. 하지만 워낙 임팩트 강한 역할이었고, 그분께서 워낙 캐릭터를 잘 만드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이제 분량이 많은 역할을 주셔야 할 텐데. 하하하.
강우석 감독에 대한 신뢰가 마구 전달되는 것 같다
- 그분의 작품도 대단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감동 받았다. 연출자로서, 인간으로서 귀감이 되시는 분이다. 강 감독님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다. 저 역시도 그렇고. (과정이) 재밌으면 결과가 모자라더라도 의미가 깊은 법이니까. 강 감독님은 보조출연자까지 한 명, 한 명 챙기시고 함부로 대하는 법도 없었다. 그런 것으로부터 신뢰가 생기는 것 같다. 결과물도 늘 좋았고.
많은 자리에서 차승원에 대한 칭찬을 해왔는데
- 중학교 후배다. 하하하. 함께 만나는 씬은 적었지만…. 사람 됨됨이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말이다. 거기에 후배라서 괜히, 그냥 좋기도 하고.
인간성·배려 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니까! 같이 하는 이들이 상처를 받는다면 그 일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공연을 두고 겉은 번드르르해도 속이 진흙탕이라면 보는 분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님은 거짓말을 안 하시는 분이다. 위대한 작품보다 그런 면면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정이 좋으면 결과도 좋다.
흥선대원군 역을 또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유준상이 그리고픈 흥선대원군은?
- 강 감독님이 보여줬듯, 흥선대원군의 치밀하고 야망 있는 모습 뒤 인간적이고 해학적인 모습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안 좋은 제도를 바꾸려 했고,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했던 인물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든 일을 많이 겪으며 인생의 큰 굴곡을 겪게 됐다. 흥선대원군의 굴곡진 인생을 잘 그리다 보면 얻는 게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터뷰를 보는 방송국·영화 관계자들이 흥선대원군을 두고 저를 캐스팅하시길 바란다. 하하하.
그렇다면 유준상이 꼽는 ‘고산자’의 관람 포인트는?
-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총·칼이 난무하는 영화가 많지 않나. 이렇게 천천히, 아름답게 흘러가는 영화는 적은 것 같다. 다들 서예가 따분하다고 여기는데 막상 해보면 위로를 느끼게 되는 것처럼, 우리 영화도 마찬가지다. 신중하게 또 치밀하게 감독님이 온 힘을 다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광과 온 가족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고산자’의 매력인 것 같다. 추석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영화가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