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교수의 차이나 아카데미] 중국법은 분쟁예방 위한 '가이드'

2016-08-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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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에 대한 오해…한중 양국 법제 '우열' 아닌 '다름'에서 비롯

형사법정만이 '진정한 법정'…민사법정은 '쓰레기처리장'

국내기업들 '회사법' 보다 '삼자기업법' 꼼꼼이 살펴야

[강효백 경희대학교 중국법학과 교수]


▲솔로몬의 재판 vs 포청천의 작두

"어느 날 한 마을에 사는 두 여인이 왕을 찾아왔다. 한 아이를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했다. 왕은 칼을 한 자루씩 여인들에게 주며 ‘살아 있는 이 아이를 둘로 잘라 반반씩 나눠가지도록 하라’ 라고 판결했다. 한 여인은 판결을 따르겠다고 동의하지만 다른 여인은 아이를 죽이지 말고 산채로 상대방에게 주라고 말했다. 그러자 왕은 양보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라고 판결한다."
구약성경(열왕기 상 3장 16~28절)에도 나오는 명판결의 대명사,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다.

중국 인민대학 법학원 방문교수 시절(2009년9월~2010년8월), 필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비교법학자, 주징원(朱景文)교수와 가끔씩 담소를 나누는 기회를 즐겼다.

하루는 주 교수가 솔로몬의 재판에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아이의 생명 경시, 수사의 부실은 차치하고, 지금도 마찬가지만 중국에서라면 그 사건은 재판의 ‘꺼리’가 아예 되지 않는, ‘사적자치 문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판관이라면 “이런 사사로운 문제는 관아로 들고 오는 게 아니다. 둘 사이에 화해와 협상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마을 어른이나 촌장에게 조정을 부탁해라, 그래도 안 된다면 촌로회의에 중재로 해결해라”라며 타일러 돌려보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주징원 교수는 바로 이런 게 재판의 ‘꺼리’가 되는 명판결이라며 필자에게 원나라의 이행보(李行甫)가 지은 '회란기(灰闌記)'에 나오는 중국 역대 명판관 포청천(包靑天 999~1062)의 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떤 부잣집 정실부인이 남편을 죽인 후에 재산을 차지할 목적으로 첩의 아들을 자기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포청천은 법정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린 다음 그 아이를 그 안에 세우고 두 여인에게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게 한다. 정실부인은 끝까지 아이의 팔을 잡아당겼으나 첩은 아이가 아파 울자 손을 놓아 버린다. 포청천은 첩이 진짜 어머니라는 판결을 내린다. 그런 즉시 정실부인의 머리를 개작두로 썽둥 잘라버린다."

한국에서 명재판의 대명사는 솔로몬의 재판이고 중국에서 그것은 포청천의 작두형이다. 이런 게 바로 한국과 중국에서의 법의 주요 ‘쓸모’ 차이다.

한·중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지 사 반세기가 가까워온다. 빛을 향해 질주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 속도와 경쟁이라도 하듯 양국간 교류는 급진전돼 왔다. (최근의 사드 배치로 인한 양국관계의 미래는 논급을 유보함.)

우리의 중국에 대한 이해도 정치·경제·사회·문화·언어·역사·지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과 심화를 거뒀다. 하지만 중국의 법제 분야에 관한 관심과 이해는 유독 취약한 편이다.

우리는 대부분 아직도 중국을 법치사회와는 관계없는, 인치와 '관시(關係)'의 공산당 일당독재국가로만 알고 있다. 지난 24년 동안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기업들은 한결같이 중국의 법제 미비와 복잡하고 불명확한 법규를 기업 운영상 최대 애로로 들고 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각 분야에서 법제화가 가속화하고 있고, 시행의 투명성도 개선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법제와 법적용, 법집행 과정에 비교하면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한·중 양국의 법제상에 ‘우열’ 이 아니라 ‘다름’ 에 있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오랜 세월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 왔기에, 중국의 법제도 우리나라와 대동소이하겠거니 하는 방심과 착각에서 비롯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고 중국에 가면 중국법을 따라야 하는 데도.

▲중국법의 ‘쓸모’는 분쟁 해결이 아닌 예방

필자의 오랜 현지 실무 경험과 연구 과정에서 체득한 중국 법제에 대한 오해 중 중요한 것 세 가지만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법의 ‘쓸모’에 대한 오해다. 중국법은 분쟁 예방에는 유효하나 분쟁 해결에는 취약하다. 우리가 매일 운동을 하고 음식을 가려먹는 이유는 질병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서다. 병원의 의료진이 우수하고 시설이 첨단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병원의 의료진의 수준이 열등하고 시설이 열악한 곳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병을 미리 예방하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예방의학에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중국법을 잘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이미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분쟁 발생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다. 중국법은 분쟁 발생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필수지식이다. 중국의 법원은 의료인의 수준이 낮고 시설이 열악한 병원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중국의 각종 법률, 특히 외국인 투자와 밀접한 법률 법령에는 인민법원 소송으로 가기 전에 반드시 먼저 화해 협상하거나 제3자의 조정에 맡기길 권장하고 있다. 그래도 안 될 경우 중재기구로 가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인민법원 소송은 마지막에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다(중국 「계약법」 제128조)(1)*

앞에서 언급한 솔로몬의 재판은 민사재판이고 포청천의 작두형은 형사재판이다. 단적으로 말해 중국에서 형사법정만이 진정한 법정이다.

민사법정은 사회성 '0점'인 개인들이, 즉 분쟁과 갈등을 타협과 협상, 중재와 조정으로도 해결 못하는, 참으로 형편없는 막장 인간들이 마지막에 오는 종말 쓰레기 처리장 같은 게 바로 민사법정이라는 오랜 관념과 관행이 뿌리내린 곳이 중국이다.

‘솔로몬의 재판’처럼 개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민사소송에 해당하는 유명 판례는 상고시대부터 현대 중국의 시공을 속속들이 봐도 찾기 어렵다. 송 나라의 포청천부터 현대의 포청천이라는 왕치산(王琦山) 당기율심사위원회 서기에 이르기까지 탐관오리의 목을 작두로 내려치는 형사판례만이 반만년 노대국 법정사(法庭史)에 낭자할 뿐이다.

서양 각국 법제의 원형인 로마법이 주로 개인의 권익을 위한 것이라면 진시황 중국통일 이후 당률, 명률, 청률에 이은 오늘날 중국의 법은 주로 국가의 조직과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다.

중국의 행정법, 형법, 경제법, 무역 투자법, 세법 등 실체법과 형사소송의 절차법은 효율성과 집행성 면에서만 볼 경우,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민상법과 민사소송 분야의 낙후성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개선 상황조차 굼뜨기 짝이 없다. 오직 못났으면 개인 간 화해와 협상으로 해결할 문제를 들고 국가의 법정에까지 찾아오다니, 중국당국은 아예 민사소송을 개선할 의지 자체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중국에서 민사소송의 현대화·선진화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황하의 강물이 동해 바닷물처럼 푸르러 지는것을 기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감히 단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에서 분쟁이 발생한 후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 중국법을 공부해서는 안 된다. 외국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한 법원소송에서 승소한 경우는 거의 없을 뿐더러 설령 승소하더라도 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분쟁 발생을 미리 예방하고 중국사업의 최종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이라는 경기장의 룰, 중국법을 확실히 파악해 두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중국법을 잘 파악하여 중국법이 사업에서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하도록 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애당초 중국법에게 해결사 역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 소송은 패가망신의 지름길’ 2016년6월17일자 아주경제 칼럼 참조).
 

중국법의 주요 기능[참고 서적: 강효백, 「중국의 슈퍼리치』, 한길사, 2016.]


▲설명·통지·해석·의견이 진짜 중요한 중국법

실제 사업에서는 상위법보다 하위 법령이 훨씬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령(시행령)과 행정 각부의 부령(시행규칙)에 해당하는 중국의 하위 법령은 설명(說明)·의견(意見)·통지(通知)·해석(解釋)·규정(規定) 등으로 표기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중국의 하위 법령들을 이름 그대로 단순한 ‘설명’이나 ‘의견’·‘해석’·‘통지’ 등 으로 잘못 알고 소홀히 대하다 낭패 보는 일이 부지기수로 많다.  그래 놓고 ‘중국에는 법도 없다’고 불평한다.

우리나라 법조계와 법학계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처럼 하위법령들을 ‘시행령’, ‘시행규칙’ 이라 하여야지, ‘설명’, ‘의견’이라 하니 누가 법령으로 알겠는가, 거봐라, 역시 중국은 법제 후진국이야, 우리나라를 따라 오려면 아직 멀었어” 라고 비웃고 있는데......,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아큐정전'의 정신승리법식 사고와 언행에 해당한다. ’시행령‘, ’시행규칙’이라는 용어 자체가 글로벌스탠더드가 아닌, 일본식 법률용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법령 명칭으로만 그것이 법률인지 대통령령인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한 조례인지 효력의 우선순위를 알 수 있다. 중국은 이같이 다양한 명칭을 효력 순위와 상관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중국 법령의 효력 순위를 파악하려면 해당법령을 제·개정한 기관이 어딘지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외국기업이라면 '삼자기업법' 꼼꼼이 살펴야…

끝으로, 외국인 투자기업에 제일 중요한 중국의 기본법률 세 가지는 합자기업법(1979년), 외자기업법(1986년), 합작기업법(1988년), 이른바 '삼자기업법'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이른바 삼자기업법으로 불리는 이 세 기본법률을 ‘외국투자법’으로 통합 개편하는 과정에 있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삼자기업법을 중국 국내기업에 관한 일반규범인 ‘회사법(公司法)’의 하위법으로 잘못 알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다수 나라의 국회가 제정한 법률은 그 효력이 동일한 것과는 달리, 중국 법률의 효력은 우리의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제정한 기본법률(중국헌법 제62조 3호)과 국회 간부로 구성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제정한 기타법률로 이원화돼 있다(중국헌법 제67조 2호).

소헌법(小憲法)으로 불리는 기본법률은 2016년 7월 말 현재 28개에 불과하며 기타법률보다 우선적 효력을 지닌다(중국헌법 제67조 3호, 입법법 제7조 참조).

삼자기업법은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올 3월에 제정된 자선법(慈善法)과 같은 기본법률로서 기타법률인 회사법보다 우선하는 상위법이자 특별법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사업에서 우리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삼자기업법과 그 하위법령들이다. 중국 내자기업에 적용되는 회사법은 참고할 만한 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패의 근본 원인은 네 탓도 그들 탓도 아니다. 내 탓이요 우리 탓이다. 중국의 법제 미비보다는 중국 법제에 대한 오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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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중국 계약법 핵심조항인 제128조 (계약분쟁의 해결)에 출현하는 주요용어의 빈도는 ‘화해’는 3회, ‘조정(調解)’은 4회, ‘중재’는 7회이지만, ‘소송(起訴)’은 단 1회에 불과하다.

[참고문헌]
강효백, 「중국의 슈퍼리치』, 한길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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