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박경복 “밖으로 드러내는 허세가 기업의 최대 악덕이다”

2016-05-1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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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83)

박경복 하이트·진로그룹 창업자[사진= 하이트·진로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밖으로 드러내는 허세가 기업의 최대 악덕이다.”

월창(月窓) 박경복 하이트·진로그룹 창업자는 아들 박문덕 회장에게 기업과 기업인은 늘 상대방에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1922년 부산에서 태어난 월창은 1941년 일본 오사카공업학교를 졸업한 뒤 1946년 대선발효에 입사하며 주류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입사 18년 만인 1964년 이 회사 사장에 취임, 이듬해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1967년 한국맥주판매 대표이사로 옮기면서 맥주와 인연을 맺었다. 1968년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조선맥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30여년 간 대표이사를 맡아 한국의 맥주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월창은 대외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사업장을 둘러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현장에 나가 직원들을 격려하고 대화하는 ‘스킨십 경영’을 중시했다. 현역 시절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생산 현장을 돌아보며 직접 제품 생산과 출고 현황을 챙겼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주일에 3일은 전북 전주, 강원 홍천, 경남 마산의 공장을 찾아가 공장 가동과 제품 생산 현황 등도 직접 파악했다.

국내 최고 주류업체의 최고경영자(CEO)였지만 월창은 절대 남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2002년 하이트맥주가 서울 강남으로 사옥을 옮기기 전까지 영등포의 3층짜리 창고건물을 본사로 사용했는데, 비가 오면 월창의 집무실에 물이 샐 정도였다. 1990년대 초까지 자신이 직접 국산 중형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공장을 둘러봤을 정도였다.

월창은 주류 이외의 사업에는 눈을 돌리지도 않을 만큼 한 우물 경영을 했다. 그가 벌인 가장 큰 ‘외도’가 소주 업체인 진로 인수였다는 말이 나올만큼 오로지 주류 사업에만 집중했다.

이에 월창은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맥주는 물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장입지를 선정하기 위해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후보지마다 돌아다니며 물을 마셔보고 주변 경관을 살펴봤다고 한다. 그가 가장 애정을 갖고 만든 곳이 강원도 홍천 공장이다. 공장 견학관 ‘하이트피아’ 1층 로비에는 월창의 흉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월창은 홍천 공장 터를 직접 골랐다. 홍천은 그와 지역적 연고가 전혀 없었던 곳이었는데, 맥주 공장을 짓기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는 것이다. 공장 건설 기간에도 수시로 현장을 방문할 정도로 큰 애정을 쏟았다. 홍천강과 도둔산이 한눈에 보이는 전경을 살리기 위해 공장 내 조경도 갖추는 등 작은 것에도 모두 그의 손길이 닿아있다.

4000억원을 투자해 당시로서는 가장 최신 설비를 갖추고 1997년 가동에 들어간 홍천 공장을 통해 하이트진로는 맥주업계 1위 기업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2007년 그가 작고했일 때 유언에 따라 고인의 묘소도 홍천 공장을 바라볼 수 있는 인접 산에 자리 잡았다.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월창이 크게 주목받았던 때가 있었다. 1997년 하이트 맥주 광고 모델로 직접 나선 것이다. 중절모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월창이 생산된 하이트 맥주를 직접 살펴보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1등이 가야할 길을 생각합니다”라는 카피가 적힌 광고는 경쟁사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하이트 맥주의 매출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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